Extraordinary Everyday!

하루 +86

지인들과 함께 하는 가족 여행이었다. 몸 상태를 고려치 않고 무리를 했나보다. 몸살이 왔나 싶었는데, 감기로 발전했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병원에서는 급성 인후염이라 진단했고 항생제가 들어있는 약을 5일치나 처방 받았다. 괜찮겠지 싶어서 저녁 약만 먹은 게 문제였을까? 벌써 한 달이 다 되가다니. 그나마 기침 가래의 횟수는 줄었다. 하지만 코의 점막이 제 기능을 못하는지 냄새를 잘 못 맡고, 밥을 먹다가 목이 잠기면서 목소리가 바뀐다. 

 

일주일 전 추석 연휴에, 남편에게 어릴 적 추억 이야기를 꺼냈다. 추억 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랄까? 이제는 하늘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추석이 되니 떠올리게 된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보다는 새벽녘 할아버지댁 마당에서 들려오던 할아버지의 재채기 소리, 가래를 뱉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 고향은 아니지만 '나의 본적'의 그 집의 냄새도 함께 불러온다. 그러다 할머니를 생각했는데, 몇 번 보지 못했던 시장통에서 나물을 파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할머니 댁에서 할머니는 늘 분주하셨다. 부엌 아궁이 앞, 마당 아궁이 앞, 사랑방 아궁이 앞. 할머니의 모습은 아궁이로 점철된 것인가? 쉬시는 모습을 못 보다니... 순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런 모습 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조부모님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드리지 못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똑삼이가 돌치레로 고열에 시달리고 있던터라 찾아가지 못했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베트남에 있어서 가지 못했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그때가 생각난다.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구나 싶어 새삼 나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요근래 리디북스에서 읽게 된 책이 '치매의 모든 것'이다. 일전에 내과의사의 수필을 본 적이 있는데, 치매 환자의 보살핌에 대한 어려움이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아직 닥치지 않았다고 제껴두기에는 그 무게감이 커서 다시금 '치매'관련 책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 어젯 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한 줄 알았는데, 전자책 캐시를 주문한 나를 확인하고, 휴대전화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하지 못해 헤매는 나를 보니, 순간 겁이 났다. 내 정신은 어디에 팔려있는 것일까? 어디에라도 팔려 있으면 다행인데 그런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러다 보니 부모님께 연락이라도 한 번 더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오늘 전화를 드려보자. 

 

 

작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날. 정확히 크리스마스 이브 전 날이다. 

같은 아파트, 구역 모임에서 만난 자매님께서 나눔해주신 '위인전기' 책을 아이가 읽었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라는 제목으로 '세반 스즈키' 인물에 대한 내용이었다. 

 

피곤해서 먼저 잠자리에 누워있던 나에게 딸이 이야기 한다.

'엄마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길 거리에 쓰레기를 주우러 가자!'

 

일전에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활동으로 바닷가 쓰레기를 줍거나, 집 근처 쓰레기를 주운 적이 있었다. 물론 순전히 내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아이도 함께 해주기는 했지만, 적극적이라기 보다는 '흥미'로운 활동 중에 한 가지였다. 이내 관심을 잊고 킥보드를 타는 것에 집중을 하기도 했으니. 

 

그런데 이 날은 달랐다. 아이의 계획 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물론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활동이었지만, 아이가 '환경 운동가'에 관한 책을 읽고 다음날 쓰레기를 주우러 가자고 행동을 계획하고 실천한 것이다. 와우! 나는 감동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크리스마스 선물이구나 싶었다.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오늘은 아이에게 '세상을 바꾸는 공부'라는 제목으로 '정약용'에 대한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가 직접 고른 책은 아니고 '엄마의 시선'으로 골라달라고 하였기에 읽어주었다. '한국 인물'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었다. 

 

책의 내용은 현재 우리나라를 다스리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일침을 가할 만한 내용이었다. 아이에게 무엇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학문'에 힘쓰는 위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가 '배움'에 대한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랬다. 그것은 나의 욕심, 욕망이었다. 

내가 아이에게 알려준 '학문'은 아이에게 '항문'으로 전달이 되었고. 아이의 장난끼가 더해져 '똥꼬'로 변질되었다. 힘주어 '학' 문이라고 말해주었지만, 이미 아이에게 '항문'으로 입력이 되었기에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배움'에 대해 알려주고자 했던 나의 기대이자 욕망은 아이의 말 한마디에 수포로 돌아갔다. 

부모의 섣부른 기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는다.

뭐 실망해도 어떠리? 그저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삶이 참 재미나면 그뿐! 

함께 하는 이 삶이 감사하다. 

 

아침 감사

하루2022. 11. 18. 11:04

새벽부터 잠을 설쳤다. 여러가지 꿈을 꾸었다. 

관광지에 놀러갔는데 타려고 기다리던 기차의 한 량이 360도 회전을 했다. 꿈에서 깜짝 놀라 울었다.

꿈 속에서 깜짝 놀라서 운 경험은 또 처음이다. 

그 전 꿈은 친구들과 식당에 찾아갔는데, 메뉴를 골라 몇 명이 먹을 건지 물어보는데, '손을 들었는데도' 수를 세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니 왜?

 

그러곤 잠에서 깼다. 7시 기상 알람을 듣고도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보니 잼을 챙겨주었으나 잼을 바를 나이프를 챙겨주지 못했다. 이런. 

 

아무튼 시작부터 늦은 오늘, 집에서 나서는 시간도 늦었다. 리스트에 적어둔 35분이 아닌 37분.

나의 '강박'은 또 신경질로 나타나고 있었다.

 

- 37분이다.

- 벌써 늦었다. 

- 리스트는 왜 작성하나 몰라. 앞으로 리스트 작성 안 해도 되겠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이는 내 모습을 거울 삼는다는 것을. 요 며칠 아이가 학교에서 겪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아이의 지속적인 표현'은 모두 '나의 모습'을 닮은 것이었다.

 

미안함이 컸으나 표현을 못하고 달리 말했다.

- 그래도 셔틀 버스만 타면 괜찮지 뭐! 라고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나의 스승이었다. 한술 더떴다. 아니 '청출어람'이라고 해야하나?

- 버스 못타도 괜찮아! 택시 타고 가면 되지!

 

- 그래 네 말이 맞다. 물론 에너지와 시간이 더 들겠지만....

(그냥 네 말이 맞다고만 하면 될 것을 굳이 에너지, 시간까지 들먹이다니... 아직은 부족하다)

 

그래도 깨달음이 있었다. 

덕분에 아이에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 동안 아이의 행동을 보니 아이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했다. 그 모습이 나를 닮은 것이었다. 20대 때 직장 선배가 내게 충언하길, '불평 불만이 많다고 했다' 나는 귓등으로 듣지는 않았지만 그 뒤로는 그저 '이래도 좋다 저래도 좋다'라는 식으로 반응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소극적인 공격이었겠지? 그때 깨닫지 못한 것을 이제 40 넘어서 깨닫는다. 아니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배우는 것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나는 언제쯤 알게 되었을까? 참으로 감사한 하루다. 

그리고 이제라도 알게 되다니 뿌듯하다. 

 

잘 살고 있다.

내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드디어 아이가 학교에 갔다. 실상 입학식은 지난주 금요일이었지만 집앞이 홍수로 침수된 탓에 입학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오늘에서야 학교에 갔다.

느긋한 애미는 뒤늦게 알았다. 아이의 준비물에 ‘체육복’이 있는데, 학비에 포함되는 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늦지 않게 구매를 해야했다.

받은지 몇 주는 지난 학교 안내서를 읽어 보고 아이의 픽업 절차를 찾아냈다.
먼저 아이가 하교할 때 학교 차량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문서에 표시해 제출 했다. 그 다음 학교의 버스 행정 담당 직원에게 알린 후, 버스 모니터 요원에게 스쿨버스를 타지 않는다고 문자로 전달했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마무리해 다행이다. 만약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면, 담임 선생님과 보조 선생님께 연락을 할 뻔했으니(지나보니 마무리 과정으로 보조 선생님께 직접 픽업하겠다는 메세지를 전했어도 괜찮을 법 하다).

그리고 아이를 직접 데리러 학교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선생님과 함께 로비로 나왔다. 아이는 버스를 타고 하교 하지 못하는 것에 조금은 아쉬워했지만 이 경험도 흔치 않은 것이기에 기억에 남겠지.

학교 기념품숍에서 아이의 체육복, 유니폼, 하우스팀 티셔츠까지 구매했다. 제일 작은 크기의 옷을 골랐어도 아이에겐 커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그 옷도 작아지겠지? 초등학교 학부모가 된 것만도 감개무량이다.

학교 정면도 찍고 학교 건물 안내도도 찍어봤다. 단면도를 보며 아이에게 ‘네 교실은 어디에 있니?’라고 물어보니 직접 안내해주겠단다. 빈 교실을 보겠구나 싶었는데, 선생님께서 계시네. 들어가도 되는지 허락을 맡고 아이의 소개에 따라 찬찬히 둘러보았다.
‘네가 있는 곳이 여기구나. 이 곳에서 친구들과 조잘 조잘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며 좋은 경험을 쌓고 있구나!’ 싶어서 대견스럽다. 자신의 교실도 직접 소개해주는 너! 참 다부지다.

고마워. 잘 자라줘서. 그리고 이 마음을 직접 전해주었다.
‘고마워!’

아이와 포켓몬 고 게임을 하고 포켓몬스터 캐릭터 이야기도 하고, 그 시간이 좋았다. 그런데, 아이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서 아이패드를 빼앗았다. 아이가 해야하는 일은 기탄수학 하루 3장 풀기였다. 그게 뭐라고. 지금 생각하면 내 생각이 꼴불견이다.

아이는 그 상황에서 ‘나를 왜 태어나게 했느냐?’고까지 말하며 울부짖었다. 아. 나 어릴 때도 그런 이야기를 부모님께 한 적이 있는데 말이다. 그 순간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왜 그랬을가? 정말 진지해야 하는 상황인데, 나 어릴 때와 겹쳐져서 일까?

어느 순간에는 아이의 아무렇지 않은 말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정말 심각한 말인데도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은 ‘내 마음의 모양새’에 따른 것일까? ‘내 마음 자체’가 ‘공감’과는 거리가 먼 상태가 된 거라서일까? 한번 더 생각해보니 나는 아이의 모습 앞에 ‘내 어릴 적 모습’을 투영했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어릴 적 나를 보는 ‘부모’의 관점이었던가? 우리 부모님도 나를 그렇게 봤을까? 아니면 아이의 난처한 상황을 내가 잔인하게 놀리고 있는 것일까?  약자에게서 필요한 것을 빼앗은 강자의 야만스러움 말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작은 생명체가 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아무 것도 모르고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 펄떡 펄떡 목 부분에서 느껴지는 맥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사바나 초원의 맹수가 된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내가 쥐고 있는 것인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생명일까? 뱃속에서부터,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시간까지 말이다.

두려웠다. 짐이라기 보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우주가 내 앞에 건네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토리처럼 내 앞에 갑자기 우주선이 뙇! 영화에서는 그 동안의 이야기가 생략되었지만. 얼마나 고생했을지….아무튼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난 우주는 나와는 다른 세계관을 갖고 내 옆에서 기똥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단지 아이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것과 ‘꾸준히 하는 습관’이 쌓여서 나중에는 ‘성취’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는 ‘기탄수학’ 문제 풀기를 싫어했다. ‘억지로’ 하는 것이라면 어쩌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수학에 대한 ‘지긋지긋함’까지 심어주는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결정력 없는 모습을 아이도 닮아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든다. 뭐 이래? 나는 이다지도 우유부단한가? 라는 생각과 더불어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은 필요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모든 행동에 뜸을 들이게 되다보니 ‘굼뜬’나의 행동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아이도 나를 닮아 ‘느린’가 보다.

다시 돌아와… 결국 지난 저녁 아이는 기탄수학 풀기 대신 ‘그림 그리기’, ‘만들기’로 눈을 돌렸다. 어쩌면 오늘도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이가 필요로 하는 또 다른 것을 빼앗을까? 그러지 말아야지. 이틀 전, 유튜브에서 나온 정신의학 전문의의 ‘자녀’관련 동영상을 보고 깨달음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날 아침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의 투정은 ‘사랑’으로 바뀌어있었다. ‘아 이것이구나. 그 동안 내가 부족했구나.’ 싶었다.

매번 부족한 것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 양육이다. 참으로 감사한 하루.

아이의 월요병

하루2022. 8. 2. 13:08

새로운 한 주 시작인 월요일, 일요일날 신나게 논 탓인지 아이는 미술하원 가기를 거부했다.
엄마를 닮아(뿔테 안경 쓴 것이 닮았다) 좋아하는 선 선생님과의 수업은 하루 미루어졌다.
오랜만에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키즈 카페에서 신나게 논 것이 좋았나보다.  
덕분에 나도 아시아나 항공배(?)를 두번이나 타고 H22 지역에 2번이나 순간이동으로 도착하는 놀이를 했다.
3주 전 한국에 다녀오며 비행기를 탔던 것이 기억에 남는 것일까? 여행 이야기로 꾸며졌는데, 그 동안 아이에게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생기질 않았나 싶어 조금 미안해지기도 했다.
평소의 엄마는 그물망이 찢어질 까봐 그 근처에는 얼씬도 안했는데, 이 날은 적극적으로 움직여주며 이야기에 동참해주니 아이도 마음에 든듯햇다. 평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금 미안하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미안함도 커지고… 주워 담아야 할 말도 늘어나네.

그럼에도, 잠자리 들기 전, 아이가 한가롭게 또 즐겁게 보낸 월요일을 이야기 하는 것이 기뻤다.
엄마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참. 늘 편지를 쓸 때 시작하는 사랑하는 아이야~ 라고 쓰는데, 아이는 매일 똑같다고 그런다.
어떻게 시작을 해보면 좋을까?
‘사랑하는’은 내 관점에서 사랑하는 것이니, 나의 생각을 빼고 다른 단어를 넣어봐야겠다.


남편은 저녁 약속이 있고, 아이는 하원할 때 구매한 소시지와 요구르트빵 간식을 먹어서 저녁 생각이 없다길래, 점심 때 먹는 메뉴 그대로 밥을 차렸다.

슬라임으로 노는 아이를 옆에 두고 넷플릭스 컨텐츠를 고심하다가 ‘다큐멘터리’ 카테고리로 정했다. 일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올라왔던 피드를 보고 ‘언젠가는 봐야지!’ 싶었는데, 이때다 싶게 고른 것이 ‘나의 문어 선생님’

내가 스포일러가 되는 것은 싫어하지만, 나의 감정을 말하려면 어쩔 수 없기도 하겠다. 글로 접하는 것과 직접 영상을 보는 것이 다르니… 이해를 구하든, 알아서 건너 뛰든 하겠지?

나는 영상 속 다시마 숲을 보면서도 울컥했고, 문어와 첫 교류를 하던 영광스러운 모습, 문어의 하얀 살점이 드러난 모습, 그리고 마지막 모습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아이와 함께 보니 눈물을 삼키게 되는데, 마음껏 소리내어 울 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하하하.

내가 바다를 만났을 때는 그랬다. 한 번은 채집 다이빙을 하다가 못 나와서 죽을 뻔도 했고, 짧으면 2주에 한 번 아니면 1달에 한 번씩 배를 타고 그물질을 하면서 바다 위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극약이 포함되었다는 멀미약을 먹고 신체의 균형감각을 마비시킨 다음에 탑승했던 몇 번의 연구선 출장은 이제 소중한 추억이다.
그렇게 가까이 하던 바다를 작정하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면 만날 일이 없으니 몹시 그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때의 그 상황이 참 감사하게 다가온다.

다큐멘터리에서 다시마 숲을 자유롭게 유영하던 다이버의 모습을 보니, 몇 번 안되는 스노클링, 스쿠버 다이빙 경험이 떠오르고, 그 때의 그 설레임도 고개를 든다. 물 속의 장면은 신기하게도 시간을 초월하여 그때 그 감각을 고스란히 불러온다. 문어 선생님과 사랑에 빠진 크레이그가 말했듯이 자연에서의 ‘소속감’, ‘일치감’을 나 또한 바닷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포유류 무리에서는 느낄 수 없던 감정을, 포유류가 흔치 않은 그 바닷속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를 겹겹이 싸고 있는 껍질이 벗겨진 다음에야 진정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스쿨링을 하는 유어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리가 가니 따라가는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이 비친다. 남들이 하니 나도 했던, 혼자로는 미약하니 그저 뒤따를 수 밖에 없던 상황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선택은 변함이 없는 듯 하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어떤 답을 구할 수 있을까?

아이 미술학원에 데려다주고, 더 커피 하우스에 들렀다.
2주 넘게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면서 몇몇 커피숍을 방문해봤다. 더 커피하우스, 하이랜드 커피, 트위터빈즈 커피.  

연속 방문이 많았던 곳은 트위터빈즈 커피.
가격이 가장 저렴한 곳일 뿐더러 눈치보지 않고 눈물을 짜낸 하이랜드 커피.
하지만 하원길에 우리 가족과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이 이 곳 더 커피하우스라 그런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오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착각도 작용했다. 이 곳에서는 블로그 포스팅을 한 기억이 있다고.

요근래 외부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하면서 네이버 블로그 포스팅을 할 수 없었다. 베트남의 네이버 접근이 어려운 것인지, 사진을 업로드하며 블로그 포스팅을 할라치면 임시저장도 되지 않는다. 결국 작성취소를 해야하는 상황.
커피숍에서도, 아코르 계열 호텔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서 네이버 블로그에 접근하는 대신 이곳 티스토리에 사진 없는 글을 적게 된다. 그런데 아쉽지만은 않다.  

그리고 욕심을 내지 말아야지 싶어 제목은 ‘잠깐 동안의 로그북’이 되어 줄 티스토리라 적어본다. 아이의 미술학원 등원도 8월 중순 학기가 시작하면 끝날테고, 나의 이런 카페 여유도 드물어지겠지?

거주지와 멀어져,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이 곳 카페가 주는 자유로움과, 고독이 오늘따라 감사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방문자 거의 없는 이 티스토리와도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 정도 느껴진다. 아하하하하.

2022.07.25 미안 일기

하루2022. 7. 25. 12:42

오늘도 늦었다. 고젝(gojek)을 불렀다.
1층에서 아이가 화장실을 간단다.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볼일을 못 봤다고 한다.
화장실에 다녀오라 말했다. 1층 택시 타는 곳에서 조금 가면 상가 화장실이 있었다. 같이 따라가 주었으나 택시 오는 경로를 봐서 미리 나와버렸다. 물론 아이에게는 말하고.

택시 운전기사가 도착했길래,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보았다. 아이가 나오질 않는다. 왜 안나오내 물었다. 실수로 휴지를 변기에 넣어서인지 물이 안 내려간다고 했다.
그 순간 생각했으면 좋았을 걸!
‘아이가 물 내리다가 당황했을 상황을….’ 두렵고 불안하기도 했을 그 상황을 말이다.

나는 아이에게 타박 먼저 했다.
왜 변기에 휴지를 버렸니? 라고
휴지통이 멀리 있었다고, 변기에 버리지 말라는 안내글을 못 봤다고. 실수라고 강조하는 아이에게 나는 ‘또 실수를 했는데 뭘 그리 당당하냐?’고 말하고 말았다. 서두르라는 엄마의 말에 볼 일 볼 생각도 까먹은 아이이게 말이다.

엄마 없이 볼 일 보는 아이를 칭찬해 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게다가 그 곳은 변기 안에 휴지를 버려도 힘주어 레버를 내리면 쉽게 물이 내려가는 곳이었다.
괜찮다고, 다시 내리면 휴지가 내려갈 거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으나, 아이에게 그 말이 담기지 않았을 거 같다. 아마도 나의 첫 반응이 기억에 남겠지. 지각에 대한 나의 신경증적 반응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아침마다 늦게 일어나고 늑장을 부리는 것! 검색을 해보니 심리적인 상태도 반영이 되는 것이라 한다. 아이에게는 어떤 마음일까. ‘나는 늦어도 괜찮아’라 말하는 아이에게 나는 ‘지각은 안 괜찮은거다’라고 설명을 하려한다. 시간 개념을 아이에게 먼저 설명해주어야겠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자.

오늘 조금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와 교감하는 것이 서툴구나!

마흔줄에 깨달았다고 여겼다. 

'나는 너와 다르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우리는 서로 다르다'라고 전해주었다. 하지만 머리와 마음 사이의 거리를 생각지 못했다. 

주말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사이, 아이는 학교를 가고 남편과 아침 산책 할 생각에, 기분 좋게 잠이 들고 또 가뿐하게 깰 수 있었다. 그 기분 상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남편과 산책하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갈등의 늪'이 도사리고 있다. 어떤 주제를 선택하느냐?는 상관이 없는 듯하다. 근본적으로 사고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알게 된다. '너와 나는 다르구나!'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도 맞도 나도 맞구나!'라고 다시 한번 알게 된다. 하지만 알게 되는 것과, 마음으로 이해하기 까지의 시간은 참으로 느리게 간다. 그리고 '언어 전달의 어려움'이 이다지도 큰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결국 '공부'를 해야하는가?

 

나는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다. 그 안에서 엿볼 수 있는 베트남 문화.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라서 열린 마음으로 배우게 되서 그런 것일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많다. 물론 이해가가지 않지만,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보는 거라 그런지 호기심의 측면이다. 그럴수록 대비가 된다. 같은 나라 같은 말을 쓰는 사람과도 이렇게 대화가 쉽지 않은데, 대화를 하면 할 수록 '나와 너가 다르다'는 것, '극명하게 다르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늘어나게 된다. 아 궁극에는 '그러한 다름'이 인간의 개성을 빛나게 할 수 있는가 보다 싶다가도, 그저 나의 이야기에 '대립'이 아닌, '공감'을 바라고 있다. 그리곤 생각한다. 우리의 대화가 끝날 즈음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이런 이야기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것일까? '정,반,합'은 과연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예전 글쓰기 수업 때 작가님이 말씀해 주신 이야기가 스친다. '부부는 대화를 안 할 수록 사이가 좋다!'. 정말 그럴 것도 같다는 결론.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저 나의 욕구일 뿐. 청자의 반응은 어쩌면 내 마음 속에 정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들보다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생각으로 지극히 타인인 배우자의 반응까지 좌지우지 하고 싶었나보다. 

 

그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자.

나의 말랑하고 어리숙한 마음은 '소녀 갬성'이라고, 소녀에게 미안하지만.... 그렇게 '소녀'를 붙여 본다. 

 

 

 

Photo by stefan moertl on Unsplash

아침부터 이상했다. 거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으로 잠이 깼다. 분명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깨고보니 5시. 커텐이 걷힌 안방은 이미 밝아진 상태였다. 뜻하지 않은 기상이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요즘 들어 아침이면 몸이 부어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아서다. 잠깐 컴퓨터를 하다가 아파트 4층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가뿐하게 자전거도 탔다. 집에 오니 7시가 살짝 넘어 아이의 등교 준비를 함께 했다.

 

아이의 가방에서 하얀 종이접시가 나왔는데, 내가 봤을 때는 보라색 동그라미 안에 뾰족한 하얀 이로 보였다. 그래서 아이에게 '괴물이냐?'고 물어봤다. 아이는 나의 물음에 마음이 상했다고 했다. 들어보니 '보라색'은 아이가 학교에서 속한 '하우스팀' 대표 색이었으며, 보라색 사이에 하얗고 뾰족한 부분은 자작나무의 무늬를 표현한 것이었다.  나의 섣부름으로 아이에게 '괴물'이냐고 물어본 것이 문제였을까? 엄마라면 아이의 그림 묘사가 무엇인지 눈치가 없었던 탓일까? 아니면 '엄마'는 아이의 모든 것을 알겠거니 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환상' 때문이었을까? 준비는 늦어졌고, 또 평소에 잘 챙겨두던 목걸이 명찰마저 어디에 두었는지 찾다가 꽉찬 엘리베이터를 한 대 보내고는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정류장에 가보니, 모두들 버스에 탄 상태였다. 아이가 타자마자 버스는 출발했다. 그렇게 금요일 하루가 시작되었다.

 

평소처럼, 남편과 아파트 근처를 돌았다. 어제도 그랬나? 궁금하게 자녀 교육 이야기를 하다가, 서양 문명 이야기를 하다가, 어째서 '정치'이야기로 들어섰을까? 처음으로 맛 본 설탕을 넣지 않은 레몬쥬스(정작 내가 설탕 빼달라고 요청했는데)를 마셔서일까? 입맛이라도 달콤했다면, 나의 생각은 달라졌을까? 평소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또 생각이 다름을 인정도 하고 있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맥 없이 겉돌았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이야기를 하지만, 서로에게 전해지지 않는달까? 전깃줄이 갑자기 끊겨서 그 끝에서 '파바박' 불꽃이 튀기지만 정작 연결이 되어 있지 않은 거 아닌가 싶은 상황이었다. 

 

나는 레몬쥬스가 있는 곳을 지켰고, 남편은 길을 나섰다.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을 해봤다. 사람마다 우선순위가 다르다. 가치체계가 이렇게 다른가? 내가 모르는 것도 있었다. 들어볼 수도 있었는데, 막무가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막무가내가 된 이유도 있었다. 나의 감정선이 갑자기 바뀐 지점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말투는 평온했지만, 더 이상 뜻을 같이 할 생각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딴소리를 지껄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남편이 서있다. 순간 '우리는 역시 인연이구나!'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출근을 해야 할 남편이나와 이야기를 하자며 다시 현관문을 연다. 나는 남편에게 '멋지게 살아!'라는 말로 빈정거림을 묻혀본다. 나의 소극적인 공격이다. 조금 치사하다. 하지만 이전 이야기를 곱씹고 나온 결과물이다. 

 

남편이 궁금한 사항은 이랬다. '한미동맹' 이야기를 하는데 왜 '아프리카 도움'이 나오는지였다. 이 맥락을 보면 내 화두는 뜬금없고 어처구니 없는 것고, 관련성이 1도 없어보이는 미친 소리가 맞긴하다만......난 현 상황을 거부하고 싶나보다. 심하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입으로 똥을 싸지르게 된다. 아하하하하하하.  

 

아이의 스쿨버스 시간에 맞춰 현관문을 나섰다. 옆옆 집의 개가 내가 반가운 것인지, 갇혀 있다가 나와서 기분이 좋은 것인지 나에게 달려들었다. 정작 개를 푼 집에서는 나오지도 않고 소리만 질렀다. 나는 마구 달려드는 개를 막다가 발목에 상처가 생겼다. 귀엽게 생긴 개임에도, 조금은 큰 덩치에, 그 무게로 달려드니 겁을 먹게 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개가 먼저 들어간다. '안돼!'라고 한국말로 소리쳤는데, 용케도 알아들었다. 긴박한 목소리가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신나서 복도로 뛰어나간다.

 

1층에 도착해서 아이가 스쿨버스에서 내렸나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아뿔싸! 아이는 이미 내려 버스 모니터요원이 보살피고 있다. 

딸 아이가 '엄마 엄마!' 소리친다. 뛰어갔더니 옆집 동생을 사귀었다고 어여 동생과 함께 가서 과자를 사고 2층 키즈카페에 가서 놀겠다고 한다(어느 누구와도 논의 없이). 명부에 사인을 하고 아이를 따라갔다. 딸 아이가 사귄 친구는 자기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인데, 키가 비슷해서인지 친구로 안 모양이다. 집에 도착해서야 내 이야기를 듣고는 동생인 줄 알았다. 

 

아이를 따라 마트로 들어갔더니 콘치를 이미 골랐다. 아이의 간식은 '용돈'으로 계산하는 것으로 규칙을 정해서 아이에게 '네 용돈으로 구매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지 않으면 좋았을 말을 했다. '엄마가 카드 안 갖고 왔으면 어쩔 뻔 했니?', 그리고 '어제처럼 카드 계산 안되어서 현금으로 해야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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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들은 아이는 해결책으로 옆집 아줌마를 택했다. OO친구 엄마! 혹시 제 과자도 계산해 주실 수 있어요?

아이는 평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잠깐 얼굴을 보았고, '인사 해야지!'라고 말해줘도 인사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옆집 동생을 버스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더니 갑자기 동생 엄마에게 '과자를 계산 해 줄 수 있냐?' 묻기까지 한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난감하다. '아이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일반적인 사회 관행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런 것은 먼저 엄마에게 물어보라고!(아마 엄마가 안 사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아줌마에게 말을 한 것이겠지?) 그리고 설명을 해주었다. '네가 사업을 해서 투자를 받는 입장이라면(좀 더 구체적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명분' 없이 그냥 사달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딸 아이가 말한다. '나는 불쌍해서' 계산 요청을 할 수 있단다. '불쌍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라고. 그 동안 7살 아이는 일주일에 20만동(1만원)을 용돈으로 받아왔다. 그런데, '소비' 카테고리에 용돈 대부분을 사용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경제교육이 아니다 싶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상황이 거듭되어 '용돈'을 협상 테이블에 세웠으나 그마저도 포기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번주 용돈을 받지 못한 상태. 저금통으로 핼러윈에 들고 다니는 호박등불을 사용하는데, 돈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으니 아이의 눈높이에서는 옆집 아줌마에게 기대하는 것이 어쩌면 낫겠다 싶었겠지. 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 뜻밖의 일이 벌어지는 것은 참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나의 당혹스러움은 오로지 내 차지! 우리 아이는 어떻게 자라날 것인가? 궁금하다. 

 

아직 배울 것들이 많다. 그것은 아이도 그리고 엄마로서의 나 또한도.... 물론 인간으로서도. 

갈 길이 멀다. 

아이의 등교 전이었다. 

양치질을 하는 아이 옆에서 비타민씨 오일을 얼굴에 바르고 있었다.

어제 저녁 함께 눕자는 아이의 청을 듣고 제대로 씻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고는 아침이 되었다. 

일어나니 얼굴이 푸석하고 당김이 있었다.

그래서 세수를 하고 오일을 발랐는데, 아이가 묻는다.

 

엄마 오일 바르는거야? 왜 바르는 거야? 예뻐지려구?

- 응 얼굴이 당겨서.

왜? 당기는데?

-응 건조해서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의 오일 바름은 '예뻐지려고!'라는 목표에 집중이 되었나보다.

지금도 예쁜데 더 예뻐지려구 그러는거야? 오일 안 발라도 되구, 엄마는 안경 써도 예쁘고, 향수 안 뿌려도 냄새 좋은데~ 라고 진지하게 말한다.

-엄마가 하고 싶어서 그래!

여러가지 답을 해보았지만 아이는 '지금 이대로의 엄마가 좋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엄마의 마음이야!

 

아이를 보내고, 산책으로 집 근처를 몇 바퀴 도는 중에 아이의 물음을 헤아려 본다. 

얼굴이 당겨서 오일을 바른 것인데, 그 동안 화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일까?

예쁘게 보이려 렌즈를 꼈는데, 시력이 나빠졌다고 이야기 해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한 것일까?

내 겨드랑이 냄새를 맡고 '으악! 하며 고래를 돌리는 아이의 장난에 '냄새 맡지마!'라고 대처하는 나의 모습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일까?

새벽기상을 하려고 애쓰는 엄마의 모습! 변하고 싶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봐서일까? 

 

그렇다면 '나의 그 마음, 나의 그 욕구'는 어디에서 왔을까? 

자기 전 오일을 발랐다면, 아침에는 당기지 않았을텐데, 그 '불편함'이 나를 이끈 것이다.

물론 아름다움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도 있다. 부드럽고 매끈한 피부가 아름담다고 생각하니까. 부드러운 촉감이 마음에 드니까. 

 

그러다가 아이의 머릿 속에 마음을 담아본다. 

나는 아이의 어떤 욕구를 살펴봐 주었을까? 

집에서 팬티만 입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7살이 되었으니 런닝 상의를 입어야 한다!'라고 이야기 했고,

간식을 사서 저녁 먹은 후에 먹겠다는 아이에게 '그 동안 너의 행동을 고려해서, 정 간식을 사고 싶으면 저녁을 먹은 후에 사라!'고도 했다. 

'너를 걱정해서, 너의 미래를 위해~'라는 미명하에 강요를 한 셈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 옷의 기능 혹은 역할과 성교육을 고려하여 상의를 입고 있으라고 하지만, 아이에게 설명을 하다보면 '무조건'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다. 또 아이에게 간식을 사고도 나중에 먹을 수 있는 '참을성'을 길러 주려면 간식 먼저 사주는 것도 의미가 있는 작업인데 말이다. 물론 간식을 여러번 먼저 사줬고 그 간식을 식사 전에 먹길 수어번 하긴 했다. 아이의 머릿속에 나의 당부는 잊혀질 만큼 강한 욕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은 '그럴만도 하지',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학교에 등교를 하니 아이에 대한 나의 마음도 재정비를 하려는 듯하다.

 

어릴 적 엄마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엄마는 나의 마론인형과 가구 액세서리 등을 버리셨다. 어느 동생에게 줬다고 하셨다. 1년은 갖고 놀았나? 함께 했던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가 나의 선물을 내 허락 없이 다루신 것에 대해 화가 났다. 지나고 보니 이제 나는 엄마 편이 되었다. 적어도 아이에게 무언가를 강하게 알려주고 싶었나보다란 생각이 든다. 아이의 허락 없이 뭔가를 버린 적은 없지만, 학교를 들어가니,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이것 저것 사회개념을 알려주고 있다. 

 

어제의 경험을 토대로 '친구 집에서 함께 논 다음에 정리를 같이 하는거야!' 친구가 '정리 함께 하자!'고 할 경우에는 '싫어!' 라고 답변 하지 말고 그 전에 역지사지로 생각해보고 함께 도우는 방향으로 하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면 아이는 말한다. '우리집에 온 누구누구는 정리 같이 안 하잖아!' 라고. 아이가 좀 자랐다 싶어 '정리의 몫'을 아이에게 돌렸더니 '싫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정리!'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습관을 들였다면 좋았을텐데, 늦은 감이 있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5-6살 때 친구 집에서 친구와 정리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는데, 지금은 왜 '싫어!'라는 말을 달고 사는 걸까? 아이의 최근 행동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그것이 악순환이 된다. 나의 그 시선을 떨궈서 그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이것 저것 학교 이야기를 해봐도, 별 반응이 없는 나의 모습을 보고 아이 나름대로 불편한 마음을 표현한다.

 

아이에게 바라는 '기대'와 '실제'에 차이를 느끼고 '실망'을 하는 나를 보게 된다. '인내'의 과정을 섣불리 포기하면 안되는데 말이다. 요 며칠 내 행동을 살펴보니 아이에게 제멋대로 군 것 같다. '교육'과 '화내기'가 지저분하게 섞여있다. 교육은 교육으로 끝나야 하는데.... 

쉽지 않구나! 아이의 모든 물음에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를 하려다 보니 지치게 된다. 부모의 권위는 어떻게 생겨날까? 말이 앞서지 않은 부모의 자발적인 행동에서 나오는 것일까? 고민이 많은 하루다. 

 

 

일주일 전이었다.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를 받아왔다. 삼겹살을 굽고 상추를 씻으려는데!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지렁이였다. 5센티미터도 안 되는 지렁이가 상추 밑동쪽에서 보였다. 

Photo by Viktor Talashuk on Unsplash

평소 비 오는 날, 바닥에 보이던 지렁이들에게는 반가운 인사도 나누고 아이와 함께 관찰도 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조우한 지렁이는 '겁'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른 적은 요근래 드물었다. 

그만큼 뜻밖의 상황. 지렁이 너도 놀랐을텐데 말이다. 참. 대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반응이 달라지다니. 

뭐 그건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일까 싶기도 하다. 

 

옆길로 새자면 나이를 먹으니 호들갑 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나 어릴 적 '호호 아줌마'는 '호들갑 호르몬' 분비 아줌마가 아니었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의식을 흐름을 전해본다. 

 

이렇게 만난 지렁이도 인연이니, 연 닿는 만큼 함께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개 혹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아이에게 '우리는 지렁이를 키워보자꾸나!'며 이야기 해주었다. 길 바닥에서 지렁이를 만났을 때 반가워하던 아이도 내 놀란 비명만치 소리를 지른다. 

 

일단 지렁이를 직접 만질 수는 없으니 지렁이가 있는 상추를 뚜껑 없이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두었다. 혹여나 도망가지 않을까도 생각해봤지만, 녀석이 그러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똑삼이의 학교 과제로 키우기 시작했던 치아씨드(두개의 화분을 만들어 하나는 햇볕에 두고 다른 하나는 햇빛이 통하지 않는 곳에 두었다. 결과적으로 빛이 통하지 않은 치아씨드는 싹이 떨어져버렸고 흙이 남았다.)

 

화분의 흙을 지렁이가 있는 통에 건물처럼 놓아주었다. 나름 점도가 있던 흙이라 흐트러짐이 없었다. 처음에 상추에 자리잡았던 지렁이는 어느 순간 흙덩이의 바닥쪽에 몸을 숨겼다. 그 사이 나는 또 다른 상추와 파프라카 꼭지를 넣어주었다. 흙덩이 물이 마를 때면,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흙덩이 안에서 스윗홈을 만들었을 지렁이를 상상했다. 어디쯤 있을까? 

 

며칠 후, 플라스팅 통을 둘러보았다. 

우어어어어, 지렁이가 보이지 않느다. 물을 좀더 뿌린 후에, 뾰족하지 않은 플라스틱 포크로 흙을 뭉개보았다.

 

이럴 수가! 지렁이가 실종됐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지렁이의 행방불명! 며칠만에 흙으로 돌아간 것일까? 지렁이가 첫날 오자마자 상추 옆에 뿜어 놓은 배설물은 물기 많은 '흙'으로만 보였는데....그렇게 자연이 된 것일까? 

 

반짝이는(?) 아니 소스라치게 놀라운 존재감으로 다가왔던 지렁이가, 갑작스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내가 깊게 살피지 못한 탓이겠지? 미안하다. 그 존재의 무거움을 가벼이 여겼구나. 

 

갑자기 내 인생이 들어온다. 나도 어느 순간 반짝이며 이 세상에 왔을텐데, 점점 나이를 먹고는 나도 무로, 자연으로 돌아가겠지? 최근 읽은 자기 계발서 내용에는 매일 변화하지 않으면, 즉 진화하지 않으면 그 인생은 죽은 것과 다름 없다고 했는데, 나는 매일 변화하는가? 세상의 변화에 발 맞추어 가는가?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아이에게는 잔소리 많은 엄마가 되었고, 남편에게는 일상의 불만은 얼굴로 보여주는 아내가 되었다. 하루하루 무엇을 했는가 적어보기도 하지만, 연습장이 운동장으로 보일만큼 내가 한 일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는 자잘한 것도 적어봐야겠다. 

코비드 19 가족

하루2022. 3. 16. 07:52

Photo by Fusion Medical Animation on Unsplash

3월 초에 걸린 코비드 19은 3일 정도의 고열과 두통, 근육통, 관절통을 동반했다. 약국에서 치료제를 구입할까? 고민할 생각이 들지 못하게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생각해보면 전화로 주문하는 것도 가능했을텐데, 통증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걸까? 

 

처음부터 치료제를 복용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열이 가라앉으면서 통증이 나아졌는데, 그 사이에 등 부위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잡겠다고 프롭테라피를 하다가 더한 통증을 느꼈고,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는 상황도 오게 되었다. 아. 열이나던 때에도 밤에 잠을 푹 자지는 못했다. 결국 새벽에 타이레놀을 복용했고, '이것이 바로 약효구나!' 싶게 통증이 덜어졌다. 그렇다고 잠을 푹 자지는 못했다. 내가 복용한 타이레놀에는 카페인이 들어 있어 잠이 달아났다. 

 

코비드 19으로 누워있는 동안, 식구들에게 '밥'은 지어 주어야 했기에, 잠깐 일어나 마스크를 하고 밥을 차려주고 나는 다시 누웠다. 함께 밥을 먹다가 아이에게 옮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되었으니까. 아이는 누워 있는 나를 보면서 '엄마 아파도 밥은 줄거지?'라고 물어봤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평소 입이 짧은 아이가 밥 걱정을 하다니.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아이에게 제대로 된 집밥 말고도 치킨 등의 배달 음식을 몇 차례 제공해주었고, 그러다 보니 함께 식사를 하고, 1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자던 것도 슬슬 가까워지고, 결국 아이도 코비드 19 증상이 나타났다. 아이는 꼬박 하루하고 반나절을 열이 났고, 열과 함께 코비드 증상도 사라졌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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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 가족은 제대로 된 격리를 하지 못했다. 배우자가 먼저 걸렸으나 방을 따로 쓸 생각도 하지 않았다. 평소 침대 위 난방텐트에서 잠을 자던 남편이 추워하길래 따듯하게 자라고 온수매트를 내주고 나와 아이가 난방텐트로 자리를 이동했는데, 어쩌면 그때 그 공간 이동으로 옮았을까? 싶기도 하고, 현관문 옆 마스크 걸이에 있던 배우자의 마스크를 우연찮게 내가 착용한 것은 아닐까에 코비드 19의 원인을 점쳐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아이는 한동안 쌩쌩했다. '역시 아이들은 면역력이 좋나봐!' 슈퍼면역이다! 하면서 섣부른 판단을 했는데, 아니었던 거지. 아이도 코비드 19 막차를 탔으니까. 아이는 그 동안 코로나 걸린 엄마가 포옹도 안 해주고 뽀뽀도 안 해준 것이 못내 아쉬웠나보다. '나도 코로나 걸렸으니 이제 엄마한테 안길 수 있다'고 좋아했으니까. 만약 평소처럼 아이를 대했다면, 내가 아플 때 아이도 함께 아파서 더 고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까지 남편과 나는 간헐적인 기침이 남아 있다. 또 나에게는 코는 막히지 않지만 코맹맹이 소리가 난다. 얼마나 이 증상이 갈지 모르겠다. 그나마 아이에게는 그런 증상이 보이지 않는다. 매일 밤 산책을 한지 4일 째, 운동으로 만회할 수 있겠지 싶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 제자리를 찾아가자. 

 

 

 

밤산책

하루2022. 3. 15. 08:41

주말동안 밤마다 했던 가족과의 밤산책이 좋았다. 목적지를 두지는 않았지만, 카페까지 걸어가서 차 한잔 마시고 다시 돌아오기. 저녁 먹는 장소로 함께 걸어가기. 그것이 좋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배우자의 손을 잡고 걷는 것이 그저 행복하고 좋았다. 그리고 어제가 왔다. 

 

낮동안 있었던 일로 아이에게 하는 몸짓과 말투에 까칠함이 묻어 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남편에게도 고운말이 나가진 않았다. 소극적인 공격! 빠른 걸음으로 한바퀴 돌아보라는 남편의 제안에 '그렇잖아도 그럴려던 참이었다!'라는 말로 응수를 했다. 그리곤 자전거 타는 아이와 남편을 광장에 남겨두고 나 혼자 잰걸음으로 아파트를 한바퀴 돌았다. 

 

낮 동안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이가 수업에 집중하기를 바랐던 나의 마음이 욕심이었을까? 첫 한바퀴를 도는 동안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신뢰', '믿음'이었다. 아이와 나 사이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이는 '엄마는 나를 못 믿는 거지?'라고 물어봤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처음엔 슬펐다. 아이의 마음이 전해져서, 그런데 시간이 거듭할 수록 드는 생각은 '또 그 이야기니?' (어쩌면 아이가 듣는 엄마의 잔소리 패턴과 같겠지?) 아무튼 아이의 말이 맞다면 나는 나 자신도 못 믿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크게 한 숨을 들이쉬게 된다. 또 한바퀴 도는 동안 나와 엄마의 관계가 떠오른다. 1주일 전, 내게 코로나 증상이 생긴지 얼마 안가 아이에게도 코로나가 왔다. 지난 2주간 코로나로 가족 모두 고생을 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고 나는 그 상황을 알렸다. 그런데 엄마는 걱정이 되는지 매일같이 전화를 주셨다. 엄마의 걱정이 이해가 되지만, 나는 왜 엄마의 전화를 '귀찮게' 여기는 것일까? 돌이켜보니 나는 엄마의 '걱정'을 나에 대한 '불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 상황을 더듬어보니, 아이 돌발진 때의 일들이 생각이 났다. 당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나는 아이가 아파서 참여를 못하는 상황이었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데 많이 지쳐있었다. 열이 떨어졌으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의 모습에 당황하고, 장례식장에 있던 배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전해들은 엄마가 내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받은 상처가 지금까지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화 받을 때의 주위 상황만 이미지로 떠오르고 내 기억에서 지워진 그 문장. 충격이 커서 무의식에서 지워버렸겠지. 직접적인지 간접적인지 내가 받아들인 것은 '엄마'로서 '너를 믿을 수 없다!'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때도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가 달랐다면 그리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렇게 엄마와의 일들을 곱씹으면서 걸었다.

 

그런데, 나머지 한바퀴를 돌려할 때 아이가 나와 함께 걷고 싶다며 손을 잡았다. 아이도 낮 동안의 일을 생각하면서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늘 아이와 손 잡고 걸을 때면 '엄마는 너와 손 잡고 걷는 것이 행복해!'라고 말해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려하지 않았다. 나의 목표는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한 바퀴를 도는 거야!'라면서 나의 속도를 줄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유튜브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뛰었다 걸었다를 반복하다가 나와 잡은 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엄마를 뒤따라갈게!'라고 이야기 한다. 뒤따라 오는 아이의 상황을 살펴보았지만, 그렇다고 나는 나의 걸음걸이를 줄이지 않았다. 아이는 어떤 생각이 들까? 지금에 와서야 내 모습을 살펴보자니 참으로 '매몰찬' 엄마였다. 

 

나는 나 자신의 생각만으로도 벅차서 아이의 존재를 받아줄 마음의 공간이 없었다. 눈치 빠른 아이도 그것을 알지 않았을까? '엄마의 자리에 나는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 것이 아닐까? 가슴이 콕콕 쑤신다. 미안해.

 

잠자리에 들때 가슴이 아프다는 내 말에 어깨를 토닥여주던 아이가 떠오른다. 참으로 고마운 존재. 나에겐 정말 큼직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사랑해! 그리고 어린 나에게도 그렇게 이야기 해준다. 

금요일 밤은 자꾸 욕심을 내게 된다. 내일의 새벽기상이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이 끝이 아닌데도, 잠을 자기가 싫어진다. 그러다가 신랑의 생일 맞이 호텔 예약이라는 소비까지 클릭을 했다. 예약하는 도중에 가격 비교를 하다가 3인 예약할 것을 기본 옵션인 1인으로 설정해놓고 예약을 하기도 했다. 결국 취소를 하고 제 예약을 하게 되는 수고로움까지 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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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초, 스사사 카페를 통해 아시아-호주 지역의 아코르 플러스 멤버십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다음날 오후 2시까지 멤버십 가입을 하면 10% 추가 할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조급해졌다.

 

담당자(싱가포르/아코르 플러스)에게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신청해야할 것이었는데, 답신이 없어서 서둘러야지 싶어 홈페이지에서 아코르 플러스 멤버십을 가입했던 거다. 결국은 취소하고 재 가입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얻었던 리워드가 리셋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나를 살펴보았다.

 

첫째, 내가 해당 멤버십 가입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담당자에게 물어보면 되었을 것인데, 나의 초심자 마인드를 들키고 싶지 않았던 거다. 처음엔 나도 이것 저것 물어봤다. 그래서 답변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 너무 많이 물어보게 되는 내 자신이 보였다. 그래서 이 정도의 물음과 답변이 오고 갔으면 나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었어야 한다라는 '쓸데없는 기준'을 세웠던 것이다. 

 

둘째,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까지 가입을 해서 10% 추가 할인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담당자 분이 결제관련 정보를 물어보지 않는 것이다. 결제는 신용카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민감한 사항'일 거라고 오해했다. 그러고는 메일/메신저로 결제정보를 보내주는 것이 아닌가 보다 싶어서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결제를 진행한 것이다. 어찌보면 '신뢰'에 대한 문제이기도 했다. 기관이나 결제 시스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결제가 아니다보니 개인에게 내 정보를 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했다.

 

셋째, 결제 과정에서 계약 문서를 꼼꼼히 확인하지 않았다. 모든 의사소통은 영어로 이루어졌다. 메일에서 분명히 싱가포르 달러로 결제된다고 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홈페이지에서는 미국 달러로 가격이 표기가 되어있다. 이때 의문을 갖고 질문을 했어야 했는데, 조급함까지 작동을 해서 결제를 진행했다.

 

아! 그 대가로 리워드 포인트가 사라진 거다. 나의 불찰이다. 그런데 내 잘못이라고 인정을 하고 나니, 상대의 답신 지연에 대한 불만이 생겨났다. 이런 반복패턴이라면 나의 발전은 없다. 뒤늦게 얻은 정보일지라도, 선택을 결정했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신중'하게 대처하자. 그리고 내가 얻은 손실 결과는 나의 책임이다. 받아들이자.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루틴에서 벗어났다. 동기부여모닝콜 영상을 보고 필사를 하게 되었다. 최근에 오디오북으로 읽고 있는 웰씽킹의 저자 켈리 최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있자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긍정의 에너지를 가져다 준 켈리최 회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헤드셋으로 듣고 있자니 아이의 소리를 못 들었나보다. 참지 못한 남편이 컴퓨터 방문을 열고 이야기한다. 갔더니 아이는 엄마를 여러번 불렀다며 내 품에 안긴다. 다시 나도 꿈속으로 빠져든다.

 

오늘은 금요일. 아이는 금요일 수업 시간마다 담임 선생님께 한글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아직은 두 번째 수업이다. 오늘은 바디파트라며 노래와 함께 '머리 어깨 무릎 발'을 하겠단다. 수업 시작 몇 분 전에야 수업 준비를 한다. 몸을 그리고 '무릎'을 적는데 무루라고 적고 있어서 '르'라고 알려주었다. 다음으로 ㅍ 받침을 적는 과정이 남았다. '릅'으로 적길래 다시 알려준다.

가르쳐주기, pixabay

그러는 동안 선생님은 오늘은 뭘 배울 거냐며? 여쭤보시는데, 아이는 적느라 답이 없다. 그럼에도 기다려주신다. 대신 내가 인사를 드려야 할 판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영상에 등장하지 않는다. 

미리미리 수업 준비를 해둬야 한다는 것을 아이가 깨달았을까? 

 

그럼에도 아이는 오늘 어떻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I am happy와 I am excited라고 이야기한다. 덧붙인 이유는 선생님께 한국어를 알려줄 수 있어서라고 한다. 아이의 행동에 나는 적잖이 놀란다. 아무렇지 않게 준비를 하고 아무렇지 않게 나눔을 한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난 감동한다. 말만 '나눔'을 얘기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나인데, '나눔'을 당연한듯 실천하는 아이가 존경스럽다. 정말로! 고맙다. 딸아! 

 

나는 아이에게 그래왔던가? 언제부터인가 '너는 이거 모르지?', '내가 더 많이 알아!'라는 눈빛으로' 아이에게 무언가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나 싶다. '이것도 못하니?'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눈빛에서 '이거 하나 제대로 못하니?'라고 말하고 있다. 들리지 않는 음성은 누구의 목소리일까? 나의 어릴 적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는 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다. 그래서 더욱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무표정한 얼굴로 신경질을 부리는 내가 보인다. 

 

쉬는 시간에 머핀을 맛보던 아이가 '엄마 우유 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엉..'이라고 건성 건성 대답하며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세번째의 '주세요!'라는 말을 듣고는 '어!!!!!'하며 음량을 높였다. 아이는 살짝 놀랐나보다. 내 눈치를 본다. 아.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우유를 가져다 주며 '네가 스스로 할 수 있잖아!'라고 타박을 준다. 

 

내 속에서는 또 '내가 왜 그러지?'라는 음성이 들린다. 

오늘부터 내가 7살 때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벌였는지 살펴봐야겠다. 

갈 길이 멀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아. 분명히 알람을 켜두었던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7시가 넘어 있었다. 5시 기상을 목표로 하고 단톡방에 인증을 하고 있었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2주간 열심히 참여했다. 5시에 타임스탬프를 찍는 나의 모습이 뿌듯했다. 물론 낮에는 졸렸다. 월요일에는 남편이 책상에 놓아둔 얼마 남지 않은 커피를 홀짝이며 시작했다. 그래도 잠이 와서 아이의 수업이 끝난 후에는 온수매트로 따듯해진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아. 역시 따듯하니 좋구나. 온수매트를 펴두지 않을 때는 아침부터 이불을 개놓았기 때문에 누울 곳이 없었다. 누우면 잠이 온다는 것을 아는 나라서 잠자리부터 정리했었는데... 온수매트 유혹을 떨쳐내질 못했구나. 아. 

알람시계, pixabay

나의 아침 루틴은 5시 기상, 온라인 매일 성경쓰기, 독서, 걷기 30분이었다. 그렇다 이미 '과거시제'가 되었다. 5시 기상과 매일 성경쓰기까지는 루틴이 된 셈인데, 독서는 진득하게 하지 못한다. '잠이 온다'가 이유다. 결국 컴퓨터 창에서 재미날 법한 것들을 찾아보다가 시간이 훌렁 사라진다. 참. 일어나서 세수도 하긴 했다. 물로 한 두어번 적시고 수건으로 닦고 끝. 그렇게 해도 졸립지 않을 거라는 자만인가? 졸리우면 자면되지 라는 시작과 함께 '놓아버림'인가? 아 앞으로 불룩 솟은 내 배를 보니 '놓아버림' 쪽으로 기울고 있다. 

 

작년 하반기에는 키토식을 한다고 쌀밥을 입에 대지 않았었다. 성격은 까칠해졌지만, 몸무게는 날카롭게 유지되었다. 어느 순간 두통이 찾아왔고, 연말 파티를 핑계로 주문했던 오레오 초코파이와 긁는복권이 담긴 킷캣을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6개월간 평균 걸음 수가 3000보 미만이었다. 결국은 나의 몸무게는 가파른 오름세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코로나 확진자나 주가 지수와는 정확히 반대 양상이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썼으니, 쓴 다음에는 평균 이상을 걸을 것이고, 진득하게 독서를 할 것이다. 왜냐고? 하고 싶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임을 나는 안다. 누군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선택과 나의 의지일 뿐이다. 그래서 기쁘게 하루를 마무리하련다. 아 좋다!

 

아침에 물끄러미 자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등을 쓰다듬어주며 자연스레 깰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이는 어제의 일을 잊고 있는 표정이었다. 얼굴에 편안함이 묻어 있었다. 물론 일어나서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전했다.

 

불과 10시간 전의 일인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 신기하다. 남편도 어깨가 좋지 않을뿐 아이에게 사랑의 눈길을 전한다.

 

이은대 작가님이 그러셨지. 일기를 쓰고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것. 그것을 생각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라!'는 것이다. 과거는 과거 그대로 내가 만들어 놓은 경험의 축적이다. 그런 의미로 소중하다. 어떤 사건이 있던지간에, 나는 그 과거를 거쳐온 사람이다. 나만의 시간, 나만의 발걸음으로 그 모든 것을 지나왔다. 그래서 뿌듯하다. 이렇게 현재를 마주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이를 온라인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도와주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블로그 포스팅 작업을 하려던 참이었나? 성경쓰기를 마저 하려던 때였나? 갑자기 컴퓨터 모니터에 가로줄이 그어졌다. 그 순간이 기억이 나지 않네. 꺼졌다 켜졌을까? 정말 한순간이었다. 누군가 윈도우에 블라인드를 친 것마냥 그렇게 검은색 가로줄이 생겼다. 신기하게도 왼쪽은 그 줄 색깔이 옅다. 다행이다. 그쪽에서 작업을 할 수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2016년 후반에 구매한 이 모니터가 2022년 초반에 고장이 난 것은 일반적인 것일까? 베트남의 불안정한 전류 때문일까?

 

내 옆에서 쭉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나만 갖고 있었나보다. 어쩌면 모니터는 잠깐씩 꺼지면서 '이상징후'를 내게 보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감지 못했구나. 이번에 알게 되었다. 함께 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그 동안 잘 관리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잠들기 전에는 껐어야 했는데, 너를 계속 켜두었구나. 

그럼에도 함께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에게 마음이 간다. 타국에 있는 자녀의 안녕을 기도하시는 부모님. 매순간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져야하는 배우자. 외로움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딸 아이.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고 소중하다. 이제는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시간. 조용히 두 손을 모아본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와 남편이 배드핑퐁(탁구채와 셔틀콕을 이용한 놀이)을 하였다.

남편은 평소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있었다. 무리를 해서 크게 움직이거나 힘을 쓰면 통증이 느껴지는 상태다.

통증치료를 받으면 좋겠다고 나는 여러 번 말했으나, 그때마다 남편은 '괜찮다'고 '스트레칭을 하면 나아지겠지'라고 해서 예약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날은 남편이 탁구채를 휘두르다가 오른쪽 어깨에 통증을 느꼈나보다. '아악!'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평소 아이와 놀 때 과장된 몸짓을 하며 소리 또한 그렇다. 아이는 아빠의 그 우스꽝스러움을 좋아한다. 지켜보는 나도 그게 참 재미있다. 그래서 남편의 외마디 소리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늘도 재미있게 노는구나 싶었다.

 

잘 생각에 안방에 누워 있었는데, 거실에서 아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또 '아악!'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아빠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공으로 아빠를 맞추려다가 그게 빗나가 라켓으로 남편의 아픈 부위를 때린 것이다. 남편은 표정이 일그러졌고, 아이는 놀랐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순식간에 상황이 심각해졌다. 

 

아이는 이 상황에서 그냥 '울음'이 아니라 울부짖었다. '놀람'과 '두려움' 등이 뒤섞인 울음이겠지? 남편이 방으로 먼저 들어오고 아이는 남아 울고 있는 것 같아 방으로 데리고 왔다.

 

사과, pixabay

나는 그 상황을 재빨리 정리하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남편의 아픔에, '사과'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이가 듣고 있는지, 이해는 하는지 눈을 맞추지도 않고, 다그쳤다.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하고 '역지사지'를 설명했다. 아이는 내 이야기에 왜 항상 '친구'가 들어가냐고 나는 '엄마 아빠가'가 더 좋은데... 라고 했다.

 

나는 또 '아이가 이해를 하지 못했구나' 싶어 부연설명을 했고 아이는 '더이상 말하기 싫다'며 잠을 청했다. 조금전만 해도 '오늘 밤에는 엄마를 꼭 껴안고 잘거야!'라고 다짐하던 아이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내가 그 상황에서 해야할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사항은 뭘까? 아직은 머리가 여물지 않은 아이의 감정도 살펴봐주었어야 했는데... 남편에게는 뭐라 말했더라? '괜찮아?', '병원 예약해줄까?'라고만 했다. 

 

하루 지난 지금 내 어릴 때가 생각났다. 친구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또 자고 싶어서 집에 가지 않고 있던 날, 엄마가 자전거를 타고 친구네로 오셨다. 그러곤 '아빠가 많이 화가 났다. 하룻 밤이면 충분하다. 집으로 가자!'라는 얘기를 하셨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집에 갔더니 목욕을 하고 나오신 아빠가 '다음부터는 외박은 안된다!'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그때 내 나이가 우리 딸 아이만큼이었던 거 같다. 그런데 이때 엄마가 아빠한테 사과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내가 뭘 잘못한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단지 그 싸늘한 분위기가 무서웠고 그래서 사과를 했다. 

 

그 뒤, 학교에 들어가서 나는 '사과'의 달인이 되었던 거 같다. 사과할 필요가 없는 상황, 내가 오히려 '사과'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내가 사과를 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사고의 과정에 일어난 것일까?  '내 존재'까지 건드려진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매일 오전 5시 전, 신부님 묵상글을 보내주는 자매님이 계시다. 내가 일어나기 전, 카톡으로 살레시오수도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보내주신다. 신부님께서는 그날 복음에 대한 이야기, 해당일이 축일인 성인에 대한 이야기 등을 들려주신다. 

 

오늘은 5시에 일어나게 되었고, 더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제 밤 12시가 넘어서, 거의 12시 반쯤에 잠이 들었는데, 평소보다 적은 수면양임에도 불구하고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그야말로 미라클 모닝이다. 

 

어제 낮에 엔젤인어스에서 주문했던 박시우 커피, 나는 레귤러를 생각했는데, 라지로 주문을 해주신 직원분! 그 분 덕분에 이 새벽에 나는 박시우 커피를 몇 모금 마시면서 정신을 깨웠다. 베트남 커피의 카페인 덕분인가? 아니면 새벽의 기운 덕분인가? 

 

신부님 강론 말씀을 읽으니 눈물이 난다. 강론 내용은 이태석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번 책 '친구가 되어주실래요?' 외에 최근에 '신부 이태석'이란 전기작품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있다. 

 

강론 말씀을 전해주신 신부님께서 집어주신 이태석 신부님의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자신감에 찬 이태석 신부는 제임스 신부를 따라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된 마을을 방문했다. 그러나 자동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는 악취를 참지 못하고 빈 들판을 향해 달음질쳤다. 그리고 톤즈의 너른 벌판에서 의술만 믿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의사와 선교 사제가 되겠다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먼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우러나왔다. ‘인간 이태석’이 무너지고 ‘사랑의 선교 사제’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너무나 상상이 갔다. 들판을 향해 달음질쳤던 이태석 신부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라면 어땠을까?

 

20대 중반, 서울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낮인지, 밤인지 모르는 시간이지만 환승역에서 어떤 이가 들어섰다. 온 몸에서 지린내가 났다. 한눈에 노숙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씻지 않은지 얼마나 되면 옷에 그런 냄새가 배일까? 지금은 이런 생각을 여유있게 하지만, 먼저 몸이 반응을 했다. 그는 나보다 지하철이 움직이는 방향 쪽에 섰고, 역에 정차할 때마다 관성의 법칙을 이기지 못한 냄새 분자가 나에게도 전해졌다. 냄새가 쏟아졌다라는 말이 더 가깝다. 그때 '분자 확산의 법칙'을 몸으로 체험했다. 왜 백화점 1층의 농도 짙은 향수에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까? 아이러니다. 

 

몇 정거장 지나 내가 있는 쪽에 자리가 나서 앉았고, 맞은편에 그도 앉았다. 그의 옆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정차를 할 때마다 하나 둘 일어났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가방을 뒤적였다. 문화상품권이 들어있던 하얀 봉투를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그 봉투에 넣었다.

 

뭐라고 적고 싶었다. '이 돈으로 목욕탕에서 몸을 씻으세요!'라는 내용을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내용은 못 쓰고 그 노숙인이 듣지 못할 소리로 얼버무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내리는 역에 다다라 그에게 봉투를 전해주고 재빨리 내렸다.

 

그에게 이런 것을 전해도 될지, 그가 선택한 냄새에 내가 괜한 반응을 한 것인지 자신 없었다. 내가 준 돈으로 그가 어떤 행동을 선택할 지 알 수도 없었다. 어쩌면 그의 전략일까?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그에게 호의를 베풀게 하는 마법의 냄새 가루일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한 끝에 전한 봉투였다. 고작 1만원이 뭐라고.

 

그 와중에 내 머릿속에서 가장 컸던 고민은 나는 마음을 내서 주는 것인데, '나는 원치도 않는데, 네가 이걸 나한테 왜 주냐?'며 그 봉투를 거절하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것이었다. 즉 '거절 당하는 것'에 대해 상처 입을까봐 마음을 재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차할 곳에 이르자, 그와 이야기할 것도 없이 일방적으로 봉투만 그의 무릎 위에 두고 뛰쳐나온 것이다.

 

그 뒤에도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10년이 훨씬 지난 후에야, 접혀있던 그 기억을 펼치며 한걸음 나아가 본다. 과연 그는 나의 행동에, 혹은 나의 메시지에 뭐라고 답했을까? 봉투를 펼쳐 본 다음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나의 행동은 누구를 향해 있는 것일까? 나인가? 그인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있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단지 냄새만 났을 뿐인데, 그를 노숙자로 오해한 것일까? 내가 돈을 준 후 대등했던 그와 나의 관계가 변하는 것이 불편했던 것일까? 단지 진한 향수 마냥 진한 지린내일 뿐인가? 

 

이것이 내가 풀어본 선물이다. 

 

 

 

 

 

 

 

모든 것은 책상에서 시작되었다.

 

재봉틀 작업용으로 구매했던 책상. 딱 그 정도의 기능을 가진 책상이었다. 나무결이 살아있는 밝은 베이지 색의 폭이 짧은 이케아 책상은 컴퓨터 방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우리집 컴퓨터 방은 책상 두 개를 갖게 되었다. 나란히 놓아도 좋지만, 장소가 협소한 탓에 컴퓨터 책상은 창문을 마주보고 있고, 내가 사용하는 책상은 책장을 마주보고 있다.

 

한동안 컴퓨터 방은 아빠 방이라고 불렸는데, 근 한달 전, 책상을 옮긴 후로는 주로 ‘컴퓨터 방’이라고 부른다. 아니다. 아이의 아빠가 주로 있으니 아빠 방이 맞았는데, 내가 의식적으로 ‘컴퓨터 방’이라고 부른 것 같다. 왜냐하면 내 방은 따로 없으니까. (내가 주로 말을 하는 대상이 똑삼이라 ‘아빠’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지 내가 남편보고 ‘아빠’라고 하지는 않는다.)

 

한 때 내 방이 될 후보는 있었다. 흑마늘을 제조하던 대용량 밥솥이 있는 방이다. 딱 한 번 뿐이었는데 ‘엄마 방’이라는 이름이 불려지기 전, 강력한 마늘향 덕분에 이름을 내주고 말았다. 애초에 그 마늘방은 내가 오랫동안 머무는 곳도 아니었다. 옷을 너는 건조대가 있어 세탁 후 드나들고, 상온보관 식료품이나 택배물품의 저장고로 사용했는데 가족 구성원 중 나의 이용률이 제일 높은 곳일 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엄마방’이라고 불릴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럼 내 방은 어디에?

 

모든 일은 책상의 자리 이동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것이 우선 순위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이유로 거실에 있던 책상을 컴퓨터 방으로 이동시켰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적극적으로 책상의 배치를 바꿨다. 어쩌면 거실의 인테리어를 바꾸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수동 리클라이너 의자와 책상이 부딪히고 또 책상 옆에 빔프로젝터 거치대가 부딪혀서 빔프로젝터가 땅바닥에 부딪혔던 그날 저녁부터였을까?

 

불과 한달 전 일인데 새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라니. 아무튼 그리 대단한 이유가 아닌데 책상은 옮겨졌고. 나는 그 뒤로 매일매일을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해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세 식구는 저녁이면 이 컴퓨터 방으로 모인다. 그렇다고 셋이 머리를 맞대는 것도 아니다. 남편은 망명의 길(Path of Exile)이라는 컴퓨터 게임을 근 한달 동안 열심히 하고 있다. 시즌제인 이 게임의 특성상 시즌이 끝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을 얻는 것이 목표이다. 남편을 보고 있자니 게임유저들과 아이템을 거래하는 것에 푹 빠져있다. 간혹 ‘멍충이’라거나 ‘호구잡혔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 나의 기분 상태에 따라 안쓰럽기도 하고 쾌재(?)를 부르기도 한다.

 

나는 혼자 있을 때는 블로그 포스팅이나 성경공부, 베트남어 동영상 강의 듣기를하고, 저녁에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상 루틴을 보완하거나 만족하며 글을 업로드한다. 그리고 똑삼이는 반쯤은 누운 자세로 쿠션에 몸을 기댄채 아이패드를 한다. 주로 엄마 아빠의 입김이 들어간 한글이 야호 같은 교육용 어플을 이용한다. 그러다 잘 안되면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EBS가 그래서 아빠한테 욕을 많이 먹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예전의 남편이라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도 물론 그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과거에는 그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서 컴퓨터 방문을 닫고서 컴퓨터 게임을 했다. 나와 똑삼이가 들어가서 이것저것 얘기를 하면 ‘왜 다들 이 좁은 곳에 오냐고?’ 묻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셋이 있으니까 참 좋다!’라고 먼저 말을 건넨다.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그래서 남편이 이제 나이를 먹은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도 좋다. 그냥 좋다. 남편의 뒷통수만 봐도, 아이의 편하게 드러누운 자세도 거리낌이 없다. 마음이 편하다. 셋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는 것. 큰 소리를 치지 않고 하고 싶은 혼잣말을 해도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 그리고 답을 한다는 것 만으로도 생생한 느낌이다. 물론 서로 각자의 시간을 독립적으로 보내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단지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이 생긴 것 뿐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녁 먹은 후 잠자기 전, 일상의 정리를 마친 후에는 이 작은 공간을 모이는 것이다.

 

 

2019년 3월,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나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결과를 보니, 특이사항으로 표재성 위염, 미란성 위염이 있었다. 그리고 벌써 2년 반이 지났다. 베트남 생활 초기 먹거리 문제로 탈이 난 적이 있지만 쉬이 넘어갔는데, 요근래는 목구멍이 꽉 막힌 느낌이 지속되어 불편감이 계속된다.

 

나는 건강염려증이 있다. 예전부터 있었겠지만 기억하는 바는 20대 때 부터다. 친한 동아리 선배가 발톱 수술을 했는데, 그걸 지켜보던 내가 불안감에 발톱을 더 바짝 깎았다가 한 달뒤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했고, 귀가 아파서 중이염인가 싶었는데, 의사 왈 ‘귀 많이 후볐죠?’라고 하셨다. 그래도 다행이라 여겨진 건 이런 건강염려증은 병원 방문과 함께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는 아이에게 정신이 팔려 나를 돌볼 시간을 찾지못해서인지 건강염려증은 더욱 심해졌다. 어떤 불안감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지 그 근원을 찾고 싶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어 그저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선 마음은 제껴두고 요가와 프롭테라피부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몸이 나아지니 마음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출산 후 건강염려증은 근원까지는 아니라도 이유는 알고 있었다. 산후우울증이었다. 하지만 부인하고 싶었다. 이토록 사랑스런 아이가 내 옆에 있는데, 우울증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입밖으로 꺼낼 엄두조차 못내고 애써 무시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자아상실감으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자라면서 집 밖으로 나갈 일도 생기고 나만의 시간도 늘어나면서 건강염려증에 대한 신체화 증상도 개선이 되었다. 그러던 중에 출장이 잦던 남편은 베트남 주재원이 되었고 가족 모두의 이주가 결정되어 이곳, 하노이에 왔다.

 

어느 정도 하노이 살이가 괜찮다고 여겨지던 차에 주변에서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터졌다. 세상에나! 내 인생에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날이 있었던가? 난데없이 형광등 공장의 화재로 수은이 누출된 일, 트럭 기사가 상수원에 폐유를 방류해 몇 주동안 식수난을 겪은 일, 다닌지 2주도 안 된 아이 유치원이 두달 후 폐업을 하게 된 일 등등. 세상에 믿을 일은 없어 보였고, 일상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

 

결국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설레임 대신 건강염려증이 더 크게 자리 잡았고 아무래도 그에 따른 신체화 증상으로 목의 답답함, 더부룩함이 나타난 듯 싶다. 게다가 하노이까지 왔는데도 끝나지 않는 남편의 잦은 해외 출장은 타지에 남겨진 나의 외로움을 더욱 증폭시켰다. 누군가에겐 몹쓸 소리겠지만, 오히려 해외출장이 어렵게된 코로나 시국이 나에겐 감사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왜?’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도대체 왜?’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뭘까?

 

평소 남편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당신은 어쩔 수 없어! 공산주의자야!” 했는데 그래서 이곳에 오게 되었나? 물론 남편 일로 오게 되었고 다함께 선택한 것이기도 했으니 ‘나의 선택’이기도 했는데, 나는 답을 다른 곳에서 찾고 싶어했다. 베트남 국민의 평균 연령이 30세라고 하는데 내가 이곳의 젊은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20대 후반에는 새터민 청소년 멘토링 활동을 했었고 직장 동아리에서는 다문화 가족과 만남의 자리를 갖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한 순간에 나는 어떤 역할을 했지? 나의 부족한 점을 살펴보니, 정기적으로 만났음에도 그들의 생활 환경이나, 마음을 제대로 살피고 보듬어 줄 기회가 있었나 싶다.

 

그 동안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그들의 마음을 아는 척, 헤아리는 척 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새로운 곳에 정착한다는 것이 새로운 문화양식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애를 써야 하는 것인지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들을 떠올린 지금에서야 나의 이 불안감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산에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가 어딘가로 휩쓸려 왔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강바닥인 느낌. 그 동안 만나왔던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게 된 지금 이 시간의 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꼭 뿌리를 내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더 불안해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 곳에서도 현재에 충실하다면 마땅히 나의 할 일을 찾을 수 있겠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깨닫고 실천하면 되겠지. 무엇보다 ‘나 자신’을 찾을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다.

 

얼마가 될지 모를 하노이 생활이지만 나의 뜻으로 일구어질 하루하루를 생각하며, 나는 다시 긴 호흡을 해본다.

 

요즘들어 내가 부족한 인간이구나를 새삼 느낀다. 미숙한 사람... 미성숙 개체임을 느낀다.

나이 서른이 넘었으면 좀더 '여물어서'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딱히 나이마다 계획을 세워둔 것은 아니구나. 그냥 돌아보니 몇살 때는 '이랬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될 뿐, '앞으로 어떻게 살자'라는 다짐을 해본 적이 있던가? 그래 있긴 있다. 새해가 돌아올 때마다 새 다이어리에 적어둔 글귀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곳엔 '좀 더 여물어 성숙한 사람이 되자!'라는 다짐 같은 것은 없었다. 내 스스로가 열매 맺는 것이 아닌.. '성과'물만 나열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더더욱 나의 모자람을 크게 느끼게 된다. 부족함, 모자람, '아 나의 그릇이 이런 모양이구나!'라는 '인지'를 시작하게 됐다. 이것도 나름 나를 보는 성과라면.. 성과인 셈인데.. 나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미 어른인데, 나이만 먹은, 시간만 보낸 어른이 된 것 같아 씁쓸함도 느낀다. 아직도 나 자신만 돌아보기에 여념이 없으니, 언제 눈을 돌려 타인들을 돌아볼 수 있을까? 

지금은 그저 누군가 내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위로해줬으면 좋겠다.

'천천히 돌아보고 오라'고.. G마켓 광고에서 G드래곤이 말하는 것 마냥...

 

어제 실험을 하기전에 샘플 박스에서 다음과 같은 종이상자(?)를 꺼내었다. 사실 저런 수납정리함은 아니고 샘플튜브를 각각 분리해주는 칸막이 종이다.  그 칸막이 종이를 눌러보기도 하고 다시 펴기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모양이 변하긴 하는데 면적까지 바뀔까?  그래서 계산을 해보았다.

네 변의 길이가 같은 정사각형/ 그리고 네변의 길이가 같은 각도가 다양한 마름모.

계산을 해보니 마른모에에서 sin(큰각도: 90도 이상) 값에 비례하여 면적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나는 면적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우유곽에 들어있는 우유를 양옆에서 눌러도 우유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면적의 변화를 알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면적의 변화를 계산하려고 이리저리 사각형, 마름모, 원까지 그려보면서 계산을 했다니.

게다가 하루가 지난 오늘에는, 그럼 왜 평행사변형은 사각형과 넓이가 같다고 했을까 라면서 다시 그림을 그려보았다.

결론 적으로는 평행사변형의 변의 길이 (서로마주보는)가 달라지더라는... 그러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예전에 이걸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을까? 있을테지? 아하하하. 참 뜬금없지 싶다.

아마도 실험실에 혼자 남아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다들 출장을 가서 나 혼자 외로워서? 음음음. 하지만 나는 할 일이 많은데...

 


나이 서른이 되었건만, 내가 아이라인을 직접 그려 본 적이 있던가?

그려본 적이 한 두어번은 되었다손, 그 얼굴로 사람들을 만나러 간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없다'

국민학교 5학년 때 피아노학원 발표회 때 드레스 입고 '어른 화장'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라인을 했는지는 가물가물 하나, 그때가 나름 제대로 된 화장이었던 것 같다.

또래친구들은 기본 화장은 다 하는 듯, 사진을 올릴 때도 민낯일 경우 보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하는데,


난 어쩌면 뻔뻔스럽게 민낯으로 지금껏 살아온 듯 싶다.

내 경우 비비 크림을 바른다 하더라도 화장할 때는 땀이 '뻘뻘'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땀을 흘릴까?


나름 '땀녀'이긴 하지만, 에어컨 밑에서 화장을 시도해봐도 인중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화장은 착착 붙지 않고 밀려지곤 해서 화장을 하면서 다시 씻으러 간 적도 여러번, 약속시간 되서 포기하고

집을 나서게 된다는;;;

아 언제 나의 화장이 긴장 되신 기쁨을 줄 것인지..
나에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필요한 것일까? 우후히히히.

그냥 팩처럼 얼굴에 붙이면 색조화장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되는게 없을까 싶다.


뭔가 이상했다.

광화문에서 열린 4대강 사업 반대 집회에 대한 영상은 뚝 끊긴듯 2초는 보여주었나 싶더니

9년 전 일어났던 9.11 테러에 대한 영상은 20초 이상을 보여주면서 멘트를 했다.

뭔가 뒤바뀐 듯한 느낌이랄까? 
굳이 건물이 붕괴되는 것을 오래도록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현재 뉴욕 시민들이 갖고 있는 이슬람교에 대한 생각이 중요한 요소였는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사안 중의 하나인 4대강 사업과 관련한 기사를
주요로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영상뿐만 아니라 멘트도 정말이지 한문장으로 끊은 것이 아쉽기만 하다.

정말 오랜만에 MBC 뉴스를 봤는데
원래 요즘 뉴스가 이러한가 싶다.
더불어 타방송의 4대강 관련 집회 내용의 방송 여부도 궁금해진다.

예전에는 그저 '삐'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름 고래와 소통이 가능한가도 싶었다.

간혹 몸을 갑자기 움직일 때 귀 안에서 '혈류'의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세차게 피가 움직이는 소리에 아직 내가 살아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런 줄 알았다..
아닌가?

그런데 며칠 전부터다.
오른쪽 귀에서 어디서 공사를 하는 것인지.. 뭐랄까?
무언가 진동하는 느낌이 든다.
'두르르르르 두르 두르르'하면서

처음엔 밖에서 공사를 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컴퓨터가 여름이 되서 더위에 맛이 가려구 그러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더라.
결국은 내 몸이 문제였다.
아하하하하하.
이명현상인 것 같다. 아직 병원에 가보질 않았는데,
나 말고도 젊은 이들이 이명현상이 많더라.

스트레스 받지 말아야 하는데 으흐흐
학회 준비하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아무튼 병원에 가봐야겠다.



우왕

너무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고 또 먹고 싶은데

한번 먹고 또 참고 한번 먹고 또 참고.... 그러고 있는

라이스 크리스피 트릿이다.

우리나라에는 왜 코스트코에만 파는거야? 회원도 아닌데 흑흑.

옆자리 박사님께서 배고플때 먹으라고 던져주셨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으함함

쫀득쫀득하면서 부드럽게 녹는 그 달콤함에 반해버렸다.

난 열량도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120kcal로 그정도의 과자 치고는 작은열량이란다. 으히히.

이기회에 코스트코에 가입을 해야 하는 것인가? 으히히히힝.



박스로 구매하고 싶다. 외국 사이트 살펴보니가 8개 정도에 3000원정도 하는 것 같던데..
아.. 괜찮은 것 같아.. 진심으로..

우리나라에서 켈로그 취급하는 회사가 어디지? 음 찾아보니 농심이군.

수입이 안되면 우리나라 쌀로라도

라이스 크리스피 트릿을 만들어다오.. 다오.. 다오..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