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ordinary Everyday!

일주일 전이었다.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를 받아왔다. 삼겹살을 굽고 상추를 씻으려는데!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지렁이였다. 5센티미터도 안 되는 지렁이가 상추 밑동쪽에서 보였다. 

Photo by Viktor Talashuk on Unsplash

평소 비 오는 날, 바닥에 보이던 지렁이들에게는 반가운 인사도 나누고 아이와 함께 관찰도 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조우한 지렁이는 '겁'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른 적은 요근래 드물었다. 

그만큼 뜻밖의 상황. 지렁이 너도 놀랐을텐데 말이다. 참. 대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반응이 달라지다니. 

뭐 그건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일까 싶기도 하다. 

 

옆길로 새자면 나이를 먹으니 호들갑 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나 어릴 적 '호호 아줌마'는 '호들갑 호르몬' 분비 아줌마가 아니었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의식을 흐름을 전해본다. 

 

이렇게 만난 지렁이도 인연이니, 연 닿는 만큼 함께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개 혹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아이에게 '우리는 지렁이를 키워보자꾸나!'며 이야기 해주었다. 길 바닥에서 지렁이를 만났을 때 반가워하던 아이도 내 놀란 비명만치 소리를 지른다. 

 

일단 지렁이를 직접 만질 수는 없으니 지렁이가 있는 상추를 뚜껑 없이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두었다. 혹여나 도망가지 않을까도 생각해봤지만, 녀석이 그러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똑삼이의 학교 과제로 키우기 시작했던 치아씨드(두개의 화분을 만들어 하나는 햇볕에 두고 다른 하나는 햇빛이 통하지 않는 곳에 두었다. 결과적으로 빛이 통하지 않은 치아씨드는 싹이 떨어져버렸고 흙이 남았다.)

 

화분의 흙을 지렁이가 있는 통에 건물처럼 놓아주었다. 나름 점도가 있던 흙이라 흐트러짐이 없었다. 처음에 상추에 자리잡았던 지렁이는 어느 순간 흙덩이의 바닥쪽에 몸을 숨겼다. 그 사이 나는 또 다른 상추와 파프라카 꼭지를 넣어주었다. 흙덩이 물이 마를 때면,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흙덩이 안에서 스윗홈을 만들었을 지렁이를 상상했다. 어디쯤 있을까? 

 

며칠 후, 플라스팅 통을 둘러보았다. 

우어어어어, 지렁이가 보이지 않느다. 물을 좀더 뿌린 후에, 뾰족하지 않은 플라스틱 포크로 흙을 뭉개보았다.

 

이럴 수가! 지렁이가 실종됐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지렁이의 행방불명! 며칠만에 흙으로 돌아간 것일까? 지렁이가 첫날 오자마자 상추 옆에 뿜어 놓은 배설물은 물기 많은 '흙'으로만 보였는데....그렇게 자연이 된 것일까? 

 

반짝이는(?) 아니 소스라치게 놀라운 존재감으로 다가왔던 지렁이가, 갑작스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내가 깊게 살피지 못한 탓이겠지? 미안하다. 그 존재의 무거움을 가벼이 여겼구나. 

 

갑자기 내 인생이 들어온다. 나도 어느 순간 반짝이며 이 세상에 왔을텐데, 점점 나이를 먹고는 나도 무로, 자연으로 돌아가겠지? 최근 읽은 자기 계발서 내용에는 매일 변화하지 않으면, 즉 진화하지 않으면 그 인생은 죽은 것과 다름 없다고 했는데, 나는 매일 변화하는가? 세상의 변화에 발 맞추어 가는가?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아이에게는 잔소리 많은 엄마가 되었고, 남편에게는 일상의 불만은 얼굴로 보여주는 아내가 되었다. 하루하루 무엇을 했는가 적어보기도 하지만, 연습장이 운동장으로 보일만큼 내가 한 일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는 자잘한 것도 적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