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ordinary Everyday!

마흔줄에 깨달았다고 여겼다. 

'나는 너와 다르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우리는 서로 다르다'라고 전해주었다. 하지만 머리와 마음 사이의 거리를 생각지 못했다. 

주말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사이, 아이는 학교를 가고 남편과 아침 산책 할 생각에, 기분 좋게 잠이 들고 또 가뿐하게 깰 수 있었다. 그 기분 상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남편과 산책하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갈등의 늪'이 도사리고 있다. 어떤 주제를 선택하느냐?는 상관이 없는 듯하다. 근본적으로 사고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알게 된다. '너와 나는 다르구나!'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도 맞도 나도 맞구나!'라고 다시 한번 알게 된다. 하지만 알게 되는 것과, 마음으로 이해하기 까지의 시간은 참으로 느리게 간다. 그리고 '언어 전달의 어려움'이 이다지도 큰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결국 '공부'를 해야하는가?

 

나는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다. 그 안에서 엿볼 수 있는 베트남 문화.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라서 열린 마음으로 배우게 되서 그런 것일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많다. 물론 이해가가지 않지만,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보는 거라 그런지 호기심의 측면이다. 그럴수록 대비가 된다. 같은 나라 같은 말을 쓰는 사람과도 이렇게 대화가 쉽지 않은데, 대화를 하면 할 수록 '나와 너가 다르다'는 것, '극명하게 다르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늘어나게 된다. 아 궁극에는 '그러한 다름'이 인간의 개성을 빛나게 할 수 있는가 보다 싶다가도, 그저 나의 이야기에 '대립'이 아닌, '공감'을 바라고 있다. 그리곤 생각한다. 우리의 대화가 끝날 즈음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이런 이야기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것일까? '정,반,합'은 과연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예전 글쓰기 수업 때 작가님이 말씀해 주신 이야기가 스친다. '부부는 대화를 안 할 수록 사이가 좋다!'. 정말 그럴 것도 같다는 결론.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저 나의 욕구일 뿐. 청자의 반응은 어쩌면 내 마음 속에 정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들보다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생각으로 지극히 타인인 배우자의 반응까지 좌지우지 하고 싶었나보다. 

 

그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자.

나의 말랑하고 어리숙한 마음은 '소녀 갬성'이라고, 소녀에게 미안하지만.... 그렇게 '소녀'를 붙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