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ordinary Everyday!

 

2019년 3월,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나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결과를 보니, 특이사항으로 표재성 위염, 미란성 위염이 있었다. 그리고 벌써 2년 반이 지났다. 베트남 생활 초기 먹거리 문제로 탈이 난 적이 있지만 쉬이 넘어갔는데, 요근래는 목구멍이 꽉 막힌 느낌이 지속되어 불편감이 계속된다.

 

나는 건강염려증이 있다. 예전부터 있었겠지만 기억하는 바는 20대 때 부터다. 친한 동아리 선배가 발톱 수술을 했는데, 그걸 지켜보던 내가 불안감에 발톱을 더 바짝 깎았다가 한 달뒤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했고, 귀가 아파서 중이염인가 싶었는데, 의사 왈 ‘귀 많이 후볐죠?’라고 하셨다. 그래도 다행이라 여겨진 건 이런 건강염려증은 병원 방문과 함께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는 아이에게 정신이 팔려 나를 돌볼 시간을 찾지못해서인지 건강염려증은 더욱 심해졌다. 어떤 불안감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지 그 근원을 찾고 싶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어 그저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선 마음은 제껴두고 요가와 프롭테라피부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몸이 나아지니 마음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출산 후 건강염려증은 근원까지는 아니라도 이유는 알고 있었다. 산후우울증이었다. 하지만 부인하고 싶었다. 이토록 사랑스런 아이가 내 옆에 있는데, 우울증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입밖으로 꺼낼 엄두조차 못내고 애써 무시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자아상실감으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자라면서 집 밖으로 나갈 일도 생기고 나만의 시간도 늘어나면서 건강염려증에 대한 신체화 증상도 개선이 되었다. 그러던 중에 출장이 잦던 남편은 베트남 주재원이 되었고 가족 모두의 이주가 결정되어 이곳, 하노이에 왔다.

 

어느 정도 하노이 살이가 괜찮다고 여겨지던 차에 주변에서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터졌다. 세상에나! 내 인생에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날이 있었던가? 난데없이 형광등 공장의 화재로 수은이 누출된 일, 트럭 기사가 상수원에 폐유를 방류해 몇 주동안 식수난을 겪은 일, 다닌지 2주도 안 된 아이 유치원이 두달 후 폐업을 하게 된 일 등등. 세상에 믿을 일은 없어 보였고, 일상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

 

결국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설레임 대신 건강염려증이 더 크게 자리 잡았고 아무래도 그에 따른 신체화 증상으로 목의 답답함, 더부룩함이 나타난 듯 싶다. 게다가 하노이까지 왔는데도 끝나지 않는 남편의 잦은 해외 출장은 타지에 남겨진 나의 외로움을 더욱 증폭시켰다. 누군가에겐 몹쓸 소리겠지만, 오히려 해외출장이 어렵게된 코로나 시국이 나에겐 감사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왜?’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도대체 왜?’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뭘까?

 

평소 남편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당신은 어쩔 수 없어! 공산주의자야!” 했는데 그래서 이곳에 오게 되었나? 물론 남편 일로 오게 되었고 다함께 선택한 것이기도 했으니 ‘나의 선택’이기도 했는데, 나는 답을 다른 곳에서 찾고 싶어했다. 베트남 국민의 평균 연령이 30세라고 하는데 내가 이곳의 젊은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20대 후반에는 새터민 청소년 멘토링 활동을 했었고 직장 동아리에서는 다문화 가족과 만남의 자리를 갖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한 순간에 나는 어떤 역할을 했지? 나의 부족한 점을 살펴보니, 정기적으로 만났음에도 그들의 생활 환경이나, 마음을 제대로 살피고 보듬어 줄 기회가 있었나 싶다.

 

그 동안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그들의 마음을 아는 척, 헤아리는 척 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새로운 곳에 정착한다는 것이 새로운 문화양식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애를 써야 하는 것인지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들을 떠올린 지금에서야 나의 이 불안감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산에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가 어딘가로 휩쓸려 왔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강바닥인 느낌. 그 동안 만나왔던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게 된 지금 이 시간의 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꼭 뿌리를 내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더 불안해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 곳에서도 현재에 충실하다면 마땅히 나의 할 일을 찾을 수 있겠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깨닫고 실천하면 되겠지. 무엇보다 ‘나 자신’을 찾을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다.

 

얼마가 될지 모를 하노이 생활이지만 나의 뜻으로 일구어질 하루하루를 생각하며, 나는 다시 긴 호흡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