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ordinary Everyday!

아이의 등교 전이었다. 

양치질을 하는 아이 옆에서 비타민씨 오일을 얼굴에 바르고 있었다.

어제 저녁 함께 눕자는 아이의 청을 듣고 제대로 씻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고는 아침이 되었다. 

일어나니 얼굴이 푸석하고 당김이 있었다.

그래서 세수를 하고 오일을 발랐는데, 아이가 묻는다.

 

엄마 오일 바르는거야? 왜 바르는 거야? 예뻐지려구?

- 응 얼굴이 당겨서.

왜? 당기는데?

-응 건조해서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의 오일 바름은 '예뻐지려고!'라는 목표에 집중이 되었나보다.

지금도 예쁜데 더 예뻐지려구 그러는거야? 오일 안 발라도 되구, 엄마는 안경 써도 예쁘고, 향수 안 뿌려도 냄새 좋은데~ 라고 진지하게 말한다.

-엄마가 하고 싶어서 그래!

여러가지 답을 해보았지만 아이는 '지금 이대로의 엄마가 좋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엄마의 마음이야!

 

아이를 보내고, 산책으로 집 근처를 몇 바퀴 도는 중에 아이의 물음을 헤아려 본다. 

얼굴이 당겨서 오일을 바른 것인데, 그 동안 화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일까?

예쁘게 보이려 렌즈를 꼈는데, 시력이 나빠졌다고 이야기 해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한 것일까?

내 겨드랑이 냄새를 맡고 '으악! 하며 고래를 돌리는 아이의 장난에 '냄새 맡지마!'라고 대처하는 나의 모습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일까?

새벽기상을 하려고 애쓰는 엄마의 모습! 변하고 싶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봐서일까? 

 

그렇다면 '나의 그 마음, 나의 그 욕구'는 어디에서 왔을까? 

자기 전 오일을 발랐다면, 아침에는 당기지 않았을텐데, 그 '불편함'이 나를 이끈 것이다.

물론 아름다움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도 있다. 부드럽고 매끈한 피부가 아름담다고 생각하니까. 부드러운 촉감이 마음에 드니까. 

 

그러다가 아이의 머릿 속에 마음을 담아본다. 

나는 아이의 어떤 욕구를 살펴봐 주었을까? 

집에서 팬티만 입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7살이 되었으니 런닝 상의를 입어야 한다!'라고 이야기 했고,

간식을 사서 저녁 먹은 후에 먹겠다는 아이에게 '그 동안 너의 행동을 고려해서, 정 간식을 사고 싶으면 저녁을 먹은 후에 사라!'고도 했다. 

'너를 걱정해서, 너의 미래를 위해~'라는 미명하에 강요를 한 셈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 옷의 기능 혹은 역할과 성교육을 고려하여 상의를 입고 있으라고 하지만, 아이에게 설명을 하다보면 '무조건'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다. 또 아이에게 간식을 사고도 나중에 먹을 수 있는 '참을성'을 길러 주려면 간식 먼저 사주는 것도 의미가 있는 작업인데 말이다. 물론 간식을 여러번 먼저 사줬고 그 간식을 식사 전에 먹길 수어번 하긴 했다. 아이의 머릿속에 나의 당부는 잊혀질 만큼 강한 욕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은 '그럴만도 하지',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학교에 등교를 하니 아이에 대한 나의 마음도 재정비를 하려는 듯하다.

 

어릴 적 엄마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엄마는 나의 마론인형과 가구 액세서리 등을 버리셨다. 어느 동생에게 줬다고 하셨다. 1년은 갖고 놀았나? 함께 했던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가 나의 선물을 내 허락 없이 다루신 것에 대해 화가 났다. 지나고 보니 이제 나는 엄마 편이 되었다. 적어도 아이에게 무언가를 강하게 알려주고 싶었나보다란 생각이 든다. 아이의 허락 없이 뭔가를 버린 적은 없지만, 학교를 들어가니,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이것 저것 사회개념을 알려주고 있다. 

 

어제의 경험을 토대로 '친구 집에서 함께 논 다음에 정리를 같이 하는거야!' 친구가 '정리 함께 하자!'고 할 경우에는 '싫어!' 라고 답변 하지 말고 그 전에 역지사지로 생각해보고 함께 도우는 방향으로 하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면 아이는 말한다. '우리집에 온 누구누구는 정리 같이 안 하잖아!' 라고. 아이가 좀 자랐다 싶어 '정리의 몫'을 아이에게 돌렸더니 '싫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정리!'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습관을 들였다면 좋았을텐데, 늦은 감이 있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5-6살 때 친구 집에서 친구와 정리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는데, 지금은 왜 '싫어!'라는 말을 달고 사는 걸까? 아이의 최근 행동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그것이 악순환이 된다. 나의 그 시선을 떨궈서 그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이것 저것 학교 이야기를 해봐도, 별 반응이 없는 나의 모습을 보고 아이 나름대로 불편한 마음을 표현한다.

 

아이에게 바라는 '기대'와 '실제'에 차이를 느끼고 '실망'을 하는 나를 보게 된다. '인내'의 과정을 섣불리 포기하면 안되는데 말이다. 요 며칠 내 행동을 살펴보니 아이에게 제멋대로 군 것 같다. '교육'과 '화내기'가 지저분하게 섞여있다. 교육은 교육으로 끝나야 하는데.... 

쉽지 않구나! 아이의 모든 물음에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를 하려다 보니 지치게 된다. 부모의 권위는 어떻게 생겨날까? 말이 앞서지 않은 부모의 자발적인 행동에서 나오는 것일까? 고민이 많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