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ordinary Everyday!

밤산책

하루2022. 3. 15. 08:41

주말동안 밤마다 했던 가족과의 밤산책이 좋았다. 목적지를 두지는 않았지만, 카페까지 걸어가서 차 한잔 마시고 다시 돌아오기. 저녁 먹는 장소로 함께 걸어가기. 그것이 좋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배우자의 손을 잡고 걷는 것이 그저 행복하고 좋았다. 그리고 어제가 왔다. 

 

낮동안 있었던 일로 아이에게 하는 몸짓과 말투에 까칠함이 묻어 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남편에게도 고운말이 나가진 않았다. 소극적인 공격! 빠른 걸음으로 한바퀴 돌아보라는 남편의 제안에 '그렇잖아도 그럴려던 참이었다!'라는 말로 응수를 했다. 그리곤 자전거 타는 아이와 남편을 광장에 남겨두고 나 혼자 잰걸음으로 아파트를 한바퀴 돌았다. 

 

낮 동안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이가 수업에 집중하기를 바랐던 나의 마음이 욕심이었을까? 첫 한바퀴를 도는 동안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신뢰', '믿음'이었다. 아이와 나 사이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이는 '엄마는 나를 못 믿는 거지?'라고 물어봤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처음엔 슬펐다. 아이의 마음이 전해져서, 그런데 시간이 거듭할 수록 드는 생각은 '또 그 이야기니?' (어쩌면 아이가 듣는 엄마의 잔소리 패턴과 같겠지?) 아무튼 아이의 말이 맞다면 나는 나 자신도 못 믿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크게 한 숨을 들이쉬게 된다. 또 한바퀴 도는 동안 나와 엄마의 관계가 떠오른다. 1주일 전, 내게 코로나 증상이 생긴지 얼마 안가 아이에게도 코로나가 왔다. 지난 2주간 코로나로 가족 모두 고생을 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고 나는 그 상황을 알렸다. 그런데 엄마는 걱정이 되는지 매일같이 전화를 주셨다. 엄마의 걱정이 이해가 되지만, 나는 왜 엄마의 전화를 '귀찮게' 여기는 것일까? 돌이켜보니 나는 엄마의 '걱정'을 나에 대한 '불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 상황을 더듬어보니, 아이 돌발진 때의 일들이 생각이 났다. 당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나는 아이가 아파서 참여를 못하는 상황이었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데 많이 지쳐있었다. 열이 떨어졌으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의 모습에 당황하고, 장례식장에 있던 배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전해들은 엄마가 내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받은 상처가 지금까지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화 받을 때의 주위 상황만 이미지로 떠오르고 내 기억에서 지워진 그 문장. 충격이 커서 무의식에서 지워버렸겠지. 직접적인지 간접적인지 내가 받아들인 것은 '엄마'로서 '너를 믿을 수 없다!'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때도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가 달랐다면 그리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렇게 엄마와의 일들을 곱씹으면서 걸었다.

 

그런데, 나머지 한바퀴를 돌려할 때 아이가 나와 함께 걷고 싶다며 손을 잡았다. 아이도 낮 동안의 일을 생각하면서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늘 아이와 손 잡고 걸을 때면 '엄마는 너와 손 잡고 걷는 것이 행복해!'라고 말해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려하지 않았다. 나의 목표는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한 바퀴를 도는 거야!'라면서 나의 속도를 줄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유튜브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뛰었다 걸었다를 반복하다가 나와 잡은 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엄마를 뒤따라갈게!'라고 이야기 한다. 뒤따라 오는 아이의 상황을 살펴보았지만, 그렇다고 나는 나의 걸음걸이를 줄이지 않았다. 아이는 어떤 생각이 들까? 지금에 와서야 내 모습을 살펴보자니 참으로 '매몰찬' 엄마였다. 

 

나는 나 자신의 생각만으로도 벅차서 아이의 존재를 받아줄 마음의 공간이 없었다. 눈치 빠른 아이도 그것을 알지 않았을까? '엄마의 자리에 나는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 것이 아닐까? 가슴이 콕콕 쑤신다. 미안해.

 

잠자리에 들때 가슴이 아프다는 내 말에 어깨를 토닥여주던 아이가 떠오른다. 참으로 고마운 존재. 나에겐 정말 큼직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사랑해! 그리고 어린 나에게도 그렇게 이야기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