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ordinary Everyday!

 

모든 것은 책상에서 시작되었다.

 

재봉틀 작업용으로 구매했던 책상. 딱 그 정도의 기능을 가진 책상이었다. 나무결이 살아있는 밝은 베이지 색의 폭이 짧은 이케아 책상은 컴퓨터 방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우리집 컴퓨터 방은 책상 두 개를 갖게 되었다. 나란히 놓아도 좋지만, 장소가 협소한 탓에 컴퓨터 책상은 창문을 마주보고 있고, 내가 사용하는 책상은 책장을 마주보고 있다.

 

한동안 컴퓨터 방은 아빠 방이라고 불렸는데, 근 한달 전, 책상을 옮긴 후로는 주로 ‘컴퓨터 방’이라고 부른다. 아니다. 아이의 아빠가 주로 있으니 아빠 방이 맞았는데, 내가 의식적으로 ‘컴퓨터 방’이라고 부른 것 같다. 왜냐하면 내 방은 따로 없으니까. (내가 주로 말을 하는 대상이 똑삼이라 ‘아빠’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지 내가 남편보고 ‘아빠’라고 하지는 않는다.)

 

한 때 내 방이 될 후보는 있었다. 흑마늘을 제조하던 대용량 밥솥이 있는 방이다. 딱 한 번 뿐이었는데 ‘엄마 방’이라는 이름이 불려지기 전, 강력한 마늘향 덕분에 이름을 내주고 말았다. 애초에 그 마늘방은 내가 오랫동안 머무는 곳도 아니었다. 옷을 너는 건조대가 있어 세탁 후 드나들고, 상온보관 식료품이나 택배물품의 저장고로 사용했는데 가족 구성원 중 나의 이용률이 제일 높은 곳일 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엄마방’이라고 불릴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럼 내 방은 어디에?

 

모든 일은 책상의 자리 이동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것이 우선 순위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이유로 거실에 있던 책상을 컴퓨터 방으로 이동시켰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적극적으로 책상의 배치를 바꿨다. 어쩌면 거실의 인테리어를 바꾸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수동 리클라이너 의자와 책상이 부딪히고 또 책상 옆에 빔프로젝터 거치대가 부딪혀서 빔프로젝터가 땅바닥에 부딪혔던 그날 저녁부터였을까?

 

불과 한달 전 일인데 새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라니. 아무튼 그리 대단한 이유가 아닌데 책상은 옮겨졌고. 나는 그 뒤로 매일매일을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해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세 식구는 저녁이면 이 컴퓨터 방으로 모인다. 그렇다고 셋이 머리를 맞대는 것도 아니다. 남편은 망명의 길(Path of Exile)이라는 컴퓨터 게임을 근 한달 동안 열심히 하고 있다. 시즌제인 이 게임의 특성상 시즌이 끝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을 얻는 것이 목표이다. 남편을 보고 있자니 게임유저들과 아이템을 거래하는 것에 푹 빠져있다. 간혹 ‘멍충이’라거나 ‘호구잡혔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 나의 기분 상태에 따라 안쓰럽기도 하고 쾌재(?)를 부르기도 한다.

 

나는 혼자 있을 때는 블로그 포스팅이나 성경공부, 베트남어 동영상 강의 듣기를하고, 저녁에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상 루틴을 보완하거나 만족하며 글을 업로드한다. 그리고 똑삼이는 반쯤은 누운 자세로 쿠션에 몸을 기댄채 아이패드를 한다. 주로 엄마 아빠의 입김이 들어간 한글이 야호 같은 교육용 어플을 이용한다. 그러다 잘 안되면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EBS가 그래서 아빠한테 욕을 많이 먹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예전의 남편이라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도 물론 그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과거에는 그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서 컴퓨터 방문을 닫고서 컴퓨터 게임을 했다. 나와 똑삼이가 들어가서 이것저것 얘기를 하면 ‘왜 다들 이 좁은 곳에 오냐고?’ 묻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셋이 있으니까 참 좋다!’라고 먼저 말을 건넨다.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그래서 남편이 이제 나이를 먹은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도 좋다. 그냥 좋다. 남편의 뒷통수만 봐도, 아이의 편하게 드러누운 자세도 거리낌이 없다. 마음이 편하다. 셋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는 것. 큰 소리를 치지 않고 하고 싶은 혼잣말을 해도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 그리고 답을 한다는 것 만으로도 생생한 느낌이다. 물론 서로 각자의 시간을 독립적으로 보내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단지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이 생긴 것 뿐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녁 먹은 후 잠자기 전, 일상의 정리를 마친 후에는 이 작은 공간을 모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