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ordinary Everyday!

아이와 포켓몬 고 게임을 하고 포켓몬스터 캐릭터 이야기도 하고, 그 시간이 좋았다. 그런데, 아이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서 아이패드를 빼앗았다. 아이가 해야하는 일은 기탄수학 하루 3장 풀기였다. 그게 뭐라고. 지금 생각하면 내 생각이 꼴불견이다.

아이는 그 상황에서 ‘나를 왜 태어나게 했느냐?’고까지 말하며 울부짖었다. 아. 나 어릴 때도 그런 이야기를 부모님께 한 적이 있는데 말이다. 그 순간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왜 그랬을가? 정말 진지해야 하는 상황인데, 나 어릴 때와 겹쳐져서 일까?

어느 순간에는 아이의 아무렇지 않은 말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정말 심각한 말인데도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은 ‘내 마음의 모양새’에 따른 것일까? ‘내 마음 자체’가 ‘공감’과는 거리가 먼 상태가 된 거라서일까? 한번 더 생각해보니 나는 아이의 모습 앞에 ‘내 어릴 적 모습’을 투영했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어릴 적 나를 보는 ‘부모’의 관점이었던가? 우리 부모님도 나를 그렇게 봤을까? 아니면 아이의 난처한 상황을 내가 잔인하게 놀리고 있는 것일까?  약자에게서 필요한 것을 빼앗은 강자의 야만스러움 말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작은 생명체가 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아무 것도 모르고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 펄떡 펄떡 목 부분에서 느껴지는 맥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사바나 초원의 맹수가 된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내가 쥐고 있는 것인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생명일까? 뱃속에서부터,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시간까지 말이다.

두려웠다. 짐이라기 보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우주가 내 앞에 건네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토리처럼 내 앞에 갑자기 우주선이 뙇! 영화에서는 그 동안의 이야기가 생략되었지만. 얼마나 고생했을지….아무튼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난 우주는 나와는 다른 세계관을 갖고 내 옆에서 기똥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단지 아이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것과 ‘꾸준히 하는 습관’이 쌓여서 나중에는 ‘성취’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는 ‘기탄수학’ 문제 풀기를 싫어했다. ‘억지로’ 하는 것이라면 어쩌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수학에 대한 ‘지긋지긋함’까지 심어주는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결정력 없는 모습을 아이도 닮아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든다. 뭐 이래? 나는 이다지도 우유부단한가? 라는 생각과 더불어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은 필요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모든 행동에 뜸을 들이게 되다보니 ‘굼뜬’나의 행동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아이도 나를 닮아 ‘느린’가 보다.

다시 돌아와… 결국 지난 저녁 아이는 기탄수학 풀기 대신 ‘그림 그리기’, ‘만들기’로 눈을 돌렸다. 어쩌면 오늘도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이가 필요로 하는 또 다른 것을 빼앗을까? 그러지 말아야지. 이틀 전, 유튜브에서 나온 정신의학 전문의의 ‘자녀’관련 동영상을 보고 깨달음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날 아침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의 투정은 ‘사랑’으로 바뀌어있었다. ‘아 이것이구나. 그 동안 내가 부족했구나.’ 싶었다.

매번 부족한 것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 양육이다. 참으로 감사한 하루.